"이번 겨울 방학은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좀 더 보람 있게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뭘 하면 좋을까?"
"다 계획이 있지."
"벌써 계획 다 세워놨어?"
"이번 겨울방학 때는 많이 먹고, 실컷 자고, 원 없이 노는 거야. 하하하!!!"
딸의 원대한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계획이었다.
빈말이라도 딸은,
"어머니, 이번에는 정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별히 내년에 중학교 입학하는 기념으로 적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라는 그런 말 같은 건 당연히(?) 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래, 어린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게 최고지. 건강하면 뭐라도 할 수 있지, 뭐."
라고 말은 했지만 그 사이에 살짝 중학교 입학 대비 '영단어 외우기'라든가 '영문법 선행학습' 같은 것에는 관심이 '혹시' 없으시냐고 물어볼 뻔했다. 사실 여름방학 때 한번 추진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의 의지박약으로 인하여 결국 무산되고 말았고, 딸도 크게 호응해 주지 않아 어영부영 넘어갔었다.
"엄마 크리스마스에 쉬잖아, 그럼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쉬어?"
딸의 알찬 겨울방학 계획을 들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아드님이 대뜸 내게 묻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너희도 학교 안 가고 아빠도 출근을 안 하는데 결국 우리 집 멤버 넷이 모두 집에 있게 생겼는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욕심을 내는 거라니?
"우리 아들, 생각해 봐. 크리스마스에 쉬지?"
"응."
"부처님 오신 날에 쉬지?"
"응."
"근데 부처님 오신 날 이브에 쉬는 거 봤어?"
"아, 맞다. 그렇네."
"크리스마스이브에 쉬면 부처님 오신 날 이브에도 쉬어야겠지?"
"엄마 말이 맞네. 아깝다."
맞긴 뭐가 맞다고. 그냥 하는 소리지.
"크리스마스 하루 쉬었으면 됐지 그 전날에도 쉬고 싶어?"
"하루 더 쉬면 좋지."
쉬면 너희는 좋겠지만 나는 더 바빠지겠지?
"그래도 괜찮아. 곧 겨울방학이니까."
아뿔싸!
그동안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게 있었다.
요즘 들어 뭔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이거였군.
딸이 방학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건 별로 상관없다.
하지만 아드님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것도 매우.
딸이 겨울방학 동안 '많이, 실컷, 원 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보내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별로 실감 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들 입에서 '겨울방학'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그만 심각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뭐 하느라고 난 겨울방학 대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람?
계속 이런저런일들이 많이 있어서 순식간에 연말이 된 줄도 모르고 살았더니 벌써 그 시기가 도래했다.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정말 신나게 놀아야지!"
언제는 신이 안 나게 놀았었던 적이 있으셨던가?
"엄마, 나 크리스마스에 나가도 되지?"
평소에도 잘 나갔으면서.
"아무튼 빨리 겨울방학이 되면 좋겠다.
난 최대한 천천히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마는 겨울방학이 영영 안 왔으면 좋겠다.(고 다소 불순한 생각까지도 다 해봤다."
내 딸은 항상 이렇게 앞서간다.
크리스마스 계획도 진작에 다 세워놓았고 겨울방학 계획도 다 세워놓았었다.
나만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을 맞게 생겼다.
겨울방학,
생각만 해도 왠지 모르게 피로가 몰려온다.
아직 방학식도 안 했는데 빨리 개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개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졸업식이 있었던가?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염치도 없이 허무맹랑한 바람을 다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