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짜고짜 언성을 높인 건 절대 아니었다고 나의 결백을 주장하는 바이다.(비록 내세울 증인은 한 명도 없지만 말이다.)
"잠깐만, 엄마!"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저 수법(?)을 쓰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나한테 보고 배운 게 가장 유력하다고 짐작되는 바이다.
"엄마, 자, 일단 5초만 기다렸다가 말을 해 봐. 지금 내가 이렇게 아들한테 소리를 칠 상황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상황인가? 화를 내지 않고 말할 수는 없을까? 내가 큰소리를 내면 아들의 기분이 어떨까? 내가 소리를 크게 내면 이 상황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해 봐."
어쭈?
말은 잘하신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으신가 보다.
아마도, 이 역시 나에게서 다 나온 것 같다.
그 뿌리는 아마도 전부 나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혹시 나 몰래 밤마다 무슨 강의라도 듣고 자는 건가?
이것은 초등학교 4학년 남자어린이가 할 법한 말이라기보다는 가족 소통 전문가나 심리상담사 비슷한 그런 분야의 사람들이 내담자에게 할 법한 소리가 아니던가?(라고 나만 혼자 지레짐작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초등학생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어린이라고 해서 못할 소리는 아니다.
기원전 500년 전에 (어디서 또 보고 듣고 읽은 것은 많았던) 내가 아이들에게 종종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아들은 정확히,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입해서 잘 써먹고 계신다.(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우리 아들 말이 맞네."
친정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속에 영감이 들어앉았다."
내지는
"어른도 못할 소리를 다 한다."
라고 말이다.
급기야
"하여튼 보통 아니다."
라는 말씀도 진심으로 하신다.
그건 나도 격하게 동감하는 바이다.
어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신통방통하다가도 또 어쩔 땐 역시 애들은 애들이구나 싶다가도 갑자기 어디서 저런 아들이 나왔을꼬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은 또 덧붙였다.
"엄마. 가족끼리 서로 좋게 말하고 대화를 해야지 이렇게 큰소리치고 그러면 되겠어? 가족이 이게 뭐야? 이런 게 가족이야?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집이 어떻게 되겠어?"
얼씨구?
좀 멀리 나가신다.
내가 뭘 어쨌기에?
순식간에 나를 '순악질 여사' 정도로 만들어버리다니!
(이쯤에서 나는 또 옛날사람 티를 팍팍 내고야 말았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기원전 2,000년경의 그 순악질 여사가 여기서 등장할 줄이야.)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이 녀석아. 엄마가 괜히 그랬어? 엄마가 너한테 같은 말을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10번 정도 말했으면 말을 들어야 할 거 아니야? 누구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엄마는 느닷없이 아들한테 화 내고 소리치는 사람인 줄 알겠다, 얘! 너도 양심이 있으면 너의 행동을 생각해 봐야지 무조건 엄마한테만 그렇게 말하면 되겠어? 네 말마따나 가족이 그러면 되겠냐고?!"
라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물론.
5초,
5초는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3초였던가 5초였던가?
정말 아들의 말처럼 몇 초만 숨을 고르고 참으면 화가 나려다가도 신기하게 화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론 우리 집 성인 남성에게는 한 번도 실천해 보지는 못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적이 더러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부처님도 3독(毒), '탐(貪)진(瞋)치(癡)'를 말씀하셨다.
불가에서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중에서 당장 그 화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성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