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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5. 2024

그 5초가 어디서 나왔게?

오해할 뻔 했다

2024. 12. 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5초만!"


아드님이 눈치도 빠르게 선수를 쳤다.

내가 발끈할 줄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말이다.

아들의 말에 나도 그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뉘 집 아들인지 참...


"우리 아들, 엄마가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한 것 같은데?"

나도 다짜고짜 언성을 높인 건 절대 아니었다고 나의 결백을 주장하는 바이다.(비록 내세울 증인은 한 명도 없지만 말이다.)

"잠깐만, 엄마!"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저 수법(?)을 쓰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나한테 보고 배운 게 가장 유력하다고 짐작되는 바이다.

"엄마, 자, 일단 5초만 기다렸다가 말을 해 봐. 지금 내가 이렇게 아들한테 소리를 칠 상황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상황인가? 화를 내지 않고 말할 수는 없을까? 내가 큰소리를 내면 아들의 기분이 어떨까? 내가 소리를 크게 내면 이 상황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해 봐."

어쭈?

말은 잘하신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으신가 보다.


아마도, 이 역시 나에게서 다 나온 것 같다.

그 뿌리는 아마도 전부 나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혹시 나 몰래 밤마다 무슨 강의라도 듣고 자는 건가?

이것은 초등학교 4학년 남자어린이가 할 법한 말이라기보다는 가족 소통 전문가나 심리상담사 비슷한 그런 분야의 사람들이 내담자에게 할 법한 소리가 아니던가?(라고 나만 혼자 지레짐작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초등학생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어린이라고 해서 못할 소리는 아니다.

기원전 500년 전에 (어디서 또 보고 듣고 읽은 것은 많았던) 내가 아이들에게 종종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아들은 정확히,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입해서 잘 써먹고 계신다.(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우리 아들 말이 맞네."

친정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속에 영감이 들어앉았다."

내지는

"어른도 못할 소리를 다 한다."

라고 말이다.

급기야

"하여튼 보통 아니다."

라는 말씀도 진심으로 하신다.

그건 나도 격하게 동감하는 바이다.

어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신통방통하다가도 또 어쩔 땐 역시 애들은 애들이구나 싶다가도 갑자기 어디서 저런 아들이 나왔을꼬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은 또 덧붙였다.

"엄마. 가족끼리 서로 좋게 말하고 대화를 해야지 이렇게 큰소리치고 그러면 되겠어? 가족이 이게 뭐야? 이런 게 가족이야?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집이 어떻게 되겠어?"

얼씨구?

좀 멀리 나가신다.

내가 뭘 어쨌기에?

순식간에 나를 '순악질 여사' 정도로 만들어버리다니!

(이쯤에서 나는 또 옛날사람 티를 팍팍 내고야 말았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기원전 2,000년경의 그 순악질 여사가 여기서 등장할 줄이야.)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이 녀석아. 엄마가 괜히 그랬어? 엄마가 너한테 같은 말을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10번 정도 말했으면 말을 들어야 할 거 아니야? 누구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엄마는 느닷없이 아들한테 화 내고 소리치는 사람인 줄 알겠다, 얘! 너도 양심이 있으면 너의 행동을 생각해 봐야지 무조건 엄마한테만 그렇게 말하면 되겠어? 네 말마따나 가족이 그러면 되겠냐고?!"

라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물론.

5초,

5초는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3초였던가 5초였던가?

정말 아들의 말처럼 몇 초만 숨을 고르고 참으면 화가 나려다가도 신기하게 화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론 우리 집 성인 남성에게는 한 번도 실천해 보지는 못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적이 더러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부처님도 3독(毒), '탐(貪)진(瞋)치(癡)'를 말씀하셨다.

불가에서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중에서 당장 그 화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성냄'이라고 한다.

설마 우리 아드님께서 성불하셨단 말인가?

드디어 미륵불이 나신 거란 말인가?

순진한 초등학생의 얼굴을 하고서?


나는 당분간 아드님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원래 비범한 자는 세상 평범한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나타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러,

나,

아드님은 아무리 살펴보고 꿰어 맞춰 봐도 그냥 평범 그 자체일 뿐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드님의 훈화말씀은 단지 '주입식 교육의 힘'이었다.

아드님은 단지 '말은 잘하는' 어린이였다.

하여튼, 참.

뉘 집 아들인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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