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밀의 화원 Aug 30. 2024

ADHD 교사의 슬픔

가난이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거라던데,

어린 날이 많이 궁핍했나 되새겨 보면,

궁핍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던 것이라 정정하게 된다.

늘 멍하고 사건에 휘말리고,

바로잡으려다 더 크게 실수하느라 하루를 다 쓰는 나에게

돈보다 뇌세포가 절실했다.


                                                           - 정지음, 젊은 ADHD의 슬픔 중에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돈보다 더 갈급한 것이 '뇌세포'라는 구절이 가슴을 후려친다.

개학 이후 과부하가 걸린 나의 뇌는

마치 구불구불한 뇌의 사잇길에 이물질이 낀 것처럼

흐리멍텅한 정신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ADHD라는 질병으로 덮어버리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멀쩡한 남들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노력해야 간신히 평균이 유지되는 일상...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뇌를 꺼내어 새롭고 깔끔한 뇌.

머릿 속에 더이상 이물질이 끼어있지 않은,

깔끔한 뇌로 다시 갈아끼우고 싶다.




발령초기에는  꽤나 잘 가르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따르는 교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얻어내기까지.

나는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나 그날 수업할 내용을 보고 또 보고나서야

이른 출근을 하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또 한 번 들여다보는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팽팽한 긴장감과 나를 '갈아넣는' 일상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몇 년 동안의 그토록 팽팽한 일상은 결국 내 몸에 종양들을 번식시켰고,

수술도 감행해야했다.

이제 더이상은,

이런 긴장감 속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도 수업 때마다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다 잔다고 하시는 말씀,

학습된 무기력이 일상화 된 아이들의 태도가

부정적인 학교문화의 뿌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처음엔 이런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내 능력의 한계치를 덮어줄 거란 생각에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이젠 아이들의 문제를 넘어서는,

나만이 아는 내 뇌기능의 미작동 또는 오작동이

더 자주, 더 가까이 나를 향해 진격하는 중이다.

나는 그들이 달려와서 주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쓰러지고 만다.

매일이 좌절인 일상.



견디다 못한 나는 불안으로 경직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앞으로 내 삶에 또다른 폭풍우를 몰고올 것이라 직감했기에

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퇴를 신청했다.


나에겐 약이 필요했다.

더이상은 마인드컨트롤이나 메모하기만으로 일상을 살아낼 수가 없었다.

진료가 가능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10군데 정도 전화를 했다.

그 가운데 당일 진료가 가능하다는 병원 1군데를 찾아냈다.

병원 근처에 주차할 곳조차 마땅히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에겐 콜택시가 있었으니...

지난 번 ADHD검사 결과지를 들고...

병원을 찾아가 접수를 하고 드디어 진료를 보았다.


보통의 직장인이면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처럼 보이는 노신사가 의사 선생님이셨다.

병원차트는 아직도 1980년대처럼 수기로 작성되어 책꽂이에 정렬된 채 

빼곡히 채워져 있었고,

의사선생님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알 수 없는 필기체의 영문으로

처방전이 내려지고 있었다.

간호사의 역할은 그 암호를 '해독'하여 컴퓨터로 입력하는 일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날아온 느낌 속에서,

나는 불안하다기보다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여겼다.

오랜 세월만큼 나와 같은 사람에 대한 경험치도 충분하실 것 같은

의사선생님의 많은 나이는 너무나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친절하셨다.

지난 번 병원에서 미처 알아듣지 못한 검사결과지의 용어와 결과의 의미들을

하나하나 잘 풀어서 설명해주셨다.

마침내 내려진 결론은. 당장 약물처방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내려왔다.

약값을 결제하려는 순간.

나는 핸드폰 케이스 카드지갑에 카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무리 가방을 뒤집어도 카드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일상의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비상용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나의 행적을 찾아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모든 곳에 전화를 돌리고

택시를 처음 탄 곳으로 돌아와 내 발걸음의 이동경로를 따라 걸어본다.

없다.

또 이 한심한 일을 반복하고야 만 것이다.

남편의 이름으로 된 생활비 카드였기에,

이 치욕적인 일을 또다시 남편에게 고해야만 했다.

돌아오는 남편의 한숨.

그 숨소리에 내 가슴에 나 있던 커다란 싱크홀이 한 뼘 더 커져버렸다.


그렇게. ADHD는 내 삶의 모든 영역을 휘저어 놓는 중이다.

가르치는 일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고,

상황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로 아이들 앞에서 실수할까봐 두려운 나는

아이들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이와 경력이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기와 반비례하면서

잉여인간. 퇴물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아무리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실수는 꼭 내 엉덩이에 달린 꼬랑지처럼 따라온다.

그리고 그렇게.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중이다.


매일이 실수투성이인 내가 저지른 사고를 조용히 뒷수습해주던 남편도

나와 아들이 시간차를 두고 계속해서 저지르는 일상의 실수들을

끊임없이 처리하는  일에 점점 지쳐가는 중이다.

(남편에게 다시 태어나면 만나지 말자고 하고 싶다.

그래야 나와 같은 아들도 태어나지 않을테고,

그는 스마트한 그만의 일상을 누릴 수 있을테니.

그것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이물질이 잔뜩 낀 것 같았던 내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맑은 정신이 주는 상쾌함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다.

이제는 술과 약 중에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으면

나는 기꺼이 약을 택할 자신이 있다.

예전에는 고민의 여지도 없이 술을 택했겠지만,

이제는 흐리멍텅한 기분좋음보다 차분한 상쾌함이 훨씬 더 갈급하다.


ADHD는 이제 곧 마흔을 넘어선 내 인생의

또다른 방향키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든다.

이런 질환을 가지고 계속 교사로 살아남기에는

팽팽한 긴장감을 견딜 자신이 더이상은 없다.

딱맞는 퍼즐은 아니더라도,

내 몸 하나 간신히라도 우겨넣을 수 있는 그 퍼즐판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래도 일은 해야하고, 오늘은 살아내야 한다.

내 슬픔을 삼키고, 불금에 퇴근한 나는

주중에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를 위해 다시 컴퓨터를 펼쳐본다.

다음 생에는 부디

맑은 뇌를 지닌 채 태어나서

직장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 퇴근할 수 있는

스마트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