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루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 Jul 31. 2022

하루 기록 (8)

2022년 7월 31일의 기록

"시간의 상대성"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상대성 이론의 내용 중에, 거리와 시간의 곱은 항상 일정하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많이 움직일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덜 움직일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같은 시계를 하루종일 비행기에 태운 경우와 그대로 내버려둔 경우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밝혀진바를 생각하면 분명 거짓된 주장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의 상대성은 그런 부류의 상대적인 시간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개인적인 체감에 따른 시간의 상대성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 번 정도는 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특별한 일이 없는 비슷한 나날들이 언제는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가고, 또 어떤 때에는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그런 경함말이다. 분위기의 차이일수도 있고, 마음의 차이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있는 일이다. 어떤 장소나 어떤 시간들은 왠지 다른 것들에 비해서 조금은 붕 떠있는 채로 느리게 흘러가고 여유롭지만 어떤 것들은 왠지 모르지만 그냥 늘 분주하고 부산스럽다.


빠르고 숨가쁜 페이스의 바쁜 삶을 두고 살아있는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는 그런 류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분명히 나 자신도 무언가를 하는 그런 생산적인 삶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분주한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생각은 안 하게 될수록 정신에 이롭고, 움직임은 없을수록 내 몸에 이로운 것이다. 논란을 자아낼수도 있는 의견일지라도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유롭고 느긋한, 할 일은 다 하고 살지만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그런 삶이 내가 생각하는 옳게 된 삶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냥 내가 동경하고 있는 유형의 삶이 그런 슬로우 라이프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제일 바쁘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분명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꽤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내 기준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다. 여튼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 있나 살펴본다면 장담하건데 내게 남아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無에 근접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 것, 한 일에 비해 남아있는 그 부산물이 적은 것이 어쩌면 지금  내 삶에 만연한 허탈하고 무기력한 번 아웃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우토반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정신 없는 속도. 그게 아니라면 동네 산책을 나온듯한 느릿느릿한 속도. 혹은 치열하게 내달리고 풀 쉬는 것을 반복하는 마치 인터벌 트레이닝과 같은 그런 속도. 어떤 유형의 삶이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인지 알 수 없다.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동경해도, 막상 그리 지내면 삭막함과 지루함에 압도되어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지금의 그런 모종의 번 아웃도 나와 맞지 않는 유형의 삶을 계속해서 살다보니 누적되었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시행 착오를 반복하다보면 분명 나에게 맞는 방식도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정말 평생 모를 노릇이다. 누군가 분명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이즈가 평생 자신한테 맞는 것이라고 착각한채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맞는 삶의 페이스와 별개로 나는 내 시간은 늘 조금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여유롭고 느린 삶을 동경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게됨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그렇다.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할 때의 시간은 거짓말처럼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워서 내 시간이 조금만이라도 더 느리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후회되고 아쉬웠던 순간들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았던 일들이 잔뜩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세상의 좋은 일들은 카메라로 담고 다시 돌려본다고 해서 원래와 같은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때로는 카메라에 담는 것에 집중하다가 그 순간을 놓치는 것 보다는, 담아두지 못해도 온몸으로 즐기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의견을 고집해서 억지로 담아두기보다는 그때 느끼는 쪽을 택했다. 다시 그런 일들을 느끼고 즐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꼭 내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갔으면 한다. 모든 것을 눈에 찬찬히 담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충분할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 기록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