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의 기록
길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무리를 보았다. '나도 그랬을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해보니 교복을 입게 되었던 해가 2013년이니, 얼추 1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몇 년 전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간혹 떠올리게 되면, 확실히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체감 못하고 있다가도 이런 사소한 일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그래도 나이가 분명 들기는 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늘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수년 전에 내가 어렸을 때의 일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그때는 무엇을 해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왠지 모르는 용기가 났었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즐거웠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지금과는 사뭇 많이 다르다. 성격도 엄청 밝았고, 친구들도 많은 그런 사람이었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해진 요즘의 나랑은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 같다. 그토록 해맑고 밝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이렇게 음침하고 현실에 찌들어 매사에 비관적인 사람이 남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씁쓸하기도 하다. 분명 어렸을 때는 꽤 괜찮은 놈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모양이니, 아마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엿본다면 기대하고 있던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달라 꽤나 실망을 하지 싶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나이로는 성인이 되었으니, 점점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히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걱정과 고민거리가 많아지고 있다. 결국 크게 본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할까 하는 그런 고민이다. 물론 이런 고민을 어렸을 때는 당연히 하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어렸을 적의 내가 걱정거리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건 또 거짓말이다. 어렸을 때의 나 자신도 분명 나만이 가지고 있던 그런 말 못 할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실컷 떠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어렸을 적에 가지고 있던 걱정거리 중에서 가장 처음 떠오르는 걱정거리는 우리 가족 안에서의 나의 위치와 관련된 고민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사고를 많이 치고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던 기억이 난다.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많이 일으켜 부모님 꽤 잔소리도 많이 듣고 혼나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 형은 중학교를 다니면서 과고 입시를 준비하며 말 그대로 모범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목적의식이 뚜렷했던 형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위기감을 느꼈었다. 형이 부모님의 기대치를 몰아 받으니, 괜히 내가 설 자리는 없고 부모님도 내가 어떻게 지내던 굳이 관심을 쓰지 않고 '그래, 뭐 너 알아서 하겠지'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런 걱정거리가 다행히 일탈로 변질되지는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고서는 오히려 '나도 뭔가 해봐야겠다'하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형도 한다면 나도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일들에 꽤 겁 없이 도전했던 것 같다. 이 당시에 학교에서는 야구까지 했었으니 여러모로 바쁘게 살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살기 시작하면서 걱정거리는 분명 늘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원 친구들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 스스로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남들에 비해서 배우는 속도가 더딘 탓에 스스로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그 와중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았던 형이 입시에 실패하면서 형은 괜찮은데 오히려 내가 풀이 죽어서 '형이 안 됐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런 정신적인 혼란은 고등학교 입시를 반쯤 포기하게 만들었고 결국 일반고 진학이라는 결정 내리게 된 것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분명 생각 없이 놀았었다. 아침에는 학교에 조금 일찍 나가서 야구를 하다가 교실에 들어갔고, 점심시간이 되면 미친 듯이 뛰어가 빠르게 밥을 해치운 다음에 친구들이랑 바로 유희왕 카드로 놀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도 분명 고민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남들도 다 겪기야 했겠지만, 그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런 학업 스트레스나 친구 관계 혹은 이성 친구 관계에서 오는 그런 고민들은 나 스스로가 느끼기엔 지구에서 제일 큰 고민거리들이었다. 철이 없던 시절이니 내 문제가 곧 세상의 문제라고 느낄 법한 나이였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지금이 되어서야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그런 문제들이 그 당시에는 크게 다가와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의 나도 분명 고민과 걱정에 치여 살며 나름대로의 심각한 삶을 살고 있던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세상에는 생각보다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과 진짜 걱정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어렸을 때의 나 자신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렇게 느끼는 순간들에 흔히 우리가 말하는 '그래, 그때가 좋았었지'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맞는 이야기다. 생각 없이 지내도 괜찮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적당히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래도 절반 이상은 해낼 수 있는 그 시기는 분명 좋은 시기다. 물론 그때는 그때만의 힘든 일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되돌아본다면 분명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했던 찬란한 10대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 지금이 좋은 시기라는 것은 그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알지 못한다. 꼭 돌아볼만한 나이가 된 사람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서 이래서 인생은 사실 알고 보면 꽤 불합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시기가 좋은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당시에 더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을 텐데.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더 열심히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을 많이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 중에 하나다. 막상 해보면 별 일이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걱정거리로 남아있을 때는 크게 느껴진다. 나이를 불문하고 늘 그렇다. 그 당시에 나를 덮치는 모든 크고 무거운 일들은 나를 짓눌러 더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버릴 것만 같다. 15살의 내가 가진 걱정들은 15살의 나를 짓눌렀을 것이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들은 지금의 나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미래의 내가 가지게 될 그런 고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보니,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나 고민들은 별 볼 것이 없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런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크게 압도되어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그런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분명 왜 그런걸로 걱정 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지나고 나서야, 그 때가 참 좋았더라며 아쉬움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늘 과거를 떠올리면 달콤하지만 쓰기도 한 다크 초콜릿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과거를 되돌아 보았을 때는 늘 사소한 고민들이다. 달리 말하면 그 당시에만 힘들뿐이지 실은 지나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앞이 캄캄하다고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그런 고민들은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으니.
낮에 있을 때는 태양이 빛나기 때문에 하늘에 같이 떠있는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태양 때문에 별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하늘에 어스름이 깔리면 조금씩 별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별은 빛나 보인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빛속에 들어가 같이 빛나고 있을 때는 본인에게서 빛이 나오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서 주위가 어두워지고 수많은 기억과 추억들의 잔해를 통해서 비로소 내가 빛이 났음을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남으로써 비로소 밝았었음을 알게 된다고 해서, 밝았던 순간들을 놓쳐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별은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게 보이듯, 어떤 일들은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아름다움이 생긴다. 다만, 모든 일들은 나중에 분명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니 너무 힘들다고 지쳐 포기하지만 말자. 포기를 해버리는 순간, 그 빛을 영영 잃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