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온 Jan 01. 2024

세 번의 육아휴직, 마침표를 찍다

2년 6개월 만에 사회로의 복귀

"오빠, 나 열심히 글을 써볼까?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해보고. 왜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잖아. 애들 키우면서도 잘 나가는 엄마들 엄청 많더라. 나도 노마드 한번 해볼까?"

"그런 작심삼일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나가서 얼른 일이나 해. 나 혼자 등골 휘게 하지 말고."


  연년생 아이를 낳으면서, 부단히도 많이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덜 쓸 수 있을까 혹은 더 모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일하는 게 너무 좋았던 내게,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내게 어떻게 아이를 세명이나 낳을 수 있느냐고 많이들 물었다. 물론 철저히 계획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리다면 어린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에 첫째를 낳고, 1년 6개월을 쉬고 복직했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여렸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아이아빠나 나나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은, 우리 둘을 '어른'처럼 보이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사람이 그리웠다. 어리숙하고 순수했지만, 그래서 더욱 사회로의 복귀를 갈망했었는지 모른다. 일종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내 인생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에겐 나의 육아 조력자인 시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는 첫째를 낳았을 때도,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봐주겠다고 두 팔 벌려 나를 도와주신 분이다. 아이는 더 이상 안 낳겠다고 하고 5년이 흘러, 계획에도 없던 '연년생'이 생겨버려 어머니께 불효 아닌 불효를 저지르고 있지만 어쨌든 어머니 없인 단 하루도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다.


"어머니, 애들 셋 괜찮으시겠어요? 큰 애야 학교 가고 손이 덜 간다고 해도 아직 애기들이 어린데... 어린이집 보낸다고 해도 너무 걱정되네요."(이렇게 말은 해놓고 어머니께서 일하라고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한 며느리)

"그래도 일해야지 어떡해. 혼자 벌어 어떻게 세명을 키우니? 여자도 자기 일 하는 게 좋지."


그렇게 나는 복직을 했다. 복직한 지 6개월이 되었다.

24년을 시작하며 유통 점장에서 유통 MD로 복직과 동시에 이직한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회사원으로 일하며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일 잘하는 법', 'MD로 성공하는 법' 같은 글은 아니다.


90년대생 MBTI ENFP인 아이 셋 워킹맘이 오랜만에 복직하여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는지, 아이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두고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풀어낸 일기장과도 같은 글이다. 나의 우당탕탕 사회적응기가 어떤 분에게는 조금이나마 위로와 재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