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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백호 Aug 09. 2015

어둠에 달빛을 넣다.

달에 관하여 2(지형 및 역사)

"We choose to go to the moon." (존 케네디 대통령)

(연설 관련 영상)

"우리는 10년 내에 달을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달을 가는 이유는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 존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9월 12일 연설에서 발표한 내용 중 하나이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낼 능력. 즉,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969년에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에 착륙하게 되었다. 20세기 선진국들에게 달은 '목표'였다. 이 연설을 시작으로 더 많은 지도자, 과학자들이 우주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는 과거보다 인류의 자취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현재 가장 멀리 나간 인간의 자취는 보이저 1호다. 보이저 1호는 인류의 소리와 위치를 담은 레코더 판을 싣고 태양권 밖으로 나갔다. 어딘가에 있을 지적 생명체를 향해서 말이다.) 이렇듯, 달은 옛날부터 지구와 함께해온 동반자였다. 그렇기에 인류는 달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저번에 이어 오늘은 달의 지형 및 달탐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다.


밝은 부분이 '달의 고지', 어두운 부분이 '달의 바다'이다.

달은 크게 밝은 부분인 '달의 고지'와 어두운 부분인 '달의 바다'로 나눠진다. 달의 바다가 어두운 이유는 과거  달에도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주위의 낮은 지형으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이때 현무암질 용암에는 어두운 광물이 많아 상대적으로 검은 색을 띠게 되었다.(따라서 상대적으로 달의 바다가 나중에  형성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달의 앞면에는 31.2%가 달의 바다인데 뒷면에는 2.6%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달의 앞면을 보면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달에서 토끼를 볼 수 있었고, 수 많은 이야기가 달과 관련해서 나온 배경이 되었다.

 달 하면 빠질수 없는 지형이 바로 '크레이터'다.

달은 대기가 희박, 아니 거의 없다. 왜냐하면 달의 자체적인 중력이 작다보니 대기를 가지고 있을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 밖의 유성체가 그대로 달에 부딪치게 된다면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크레이터'가 생기게 된다. 달에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풍화, 침식작용도 일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한번 생긴 크레이터는 영영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최초의 발자국. 이 발자국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닐 암스트롱은 이 발자국을 찍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

크레이터 이외에도 달 남반구 쪽에서 관측할 수 있는 방사형 구조를 볼 수가 있다.


달은 어떻게 생겼어요?

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 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설 4가지를  소개하겠다.


1. 동시 생성설

'자매모델'이라고도 불리는 이 설은 원시 지구를 돌고 있던 미행성들이 뭉쳐서 지구와 달을  형성했다는 것인데 이 모델은 지구에 비해 달에 철(Fe) 성분이 적다는 것이  문제화되고 있다.


2. 포획설

이 모델은 달이 우주를 떠돌다가 지구의 중력에 의해 포획되어서 현재 위성이 되었다는 모델이다. 하지만 달이 지구의 중력에  포획되기에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성분이 지구와 많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포획모델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들의 위성의 형성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모델이다.


3. 분리설

지구가 굳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자전을 해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현재의 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은 달의 공전 궤도면이 지구의 적도에 가깝긴 보단 황도에 더 가깝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4. 충돌설

충돌설을 설명하는 그림중 하나

지구 형성 초기에 화성질량의 2배 만한 천체가 충돌하여 두 천체가 합체하고 그 파편들이 지구를 돌면서 기체와 먼지구름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모여 달을  형성하였다는 설이다. 이 설은 앞서서 말했던 3가지 모델들의 문제점들은 잘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가능성이 입증된 모델이다. 따라서 현재 '충돌설'이 가장 강력하게 지지를 받고 있다.


월면차를 타고 있는 우주 비행사

인간이라는 동물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들에게 달은 하나의 목표였다. 우리가 달에 가기까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하나씩 파헤쳐 보자.


우리가 직접 달에 위성을 보내서 달을  탐사한 것은 1959년 소련의 루나 2호에서  시작되었다.

  루나 2호. 최초로 달 표면에 도착한 탐사선이다.

사실 20세기에 달 탐사가  가속화된 이유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Cold War,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간의 정치,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상태. 무기를 쓰진 않았다.) 상태에서  비롯되었다. 서로간의 경쟁은 미국의 아폴로 계획으로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낸 것 까지  계속되었다.

왼쪽부터 암스트롱, 콜린스, 올드린이다.(암스트롱 해맑다.)

아폴로 11호는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었는데, 이 때 그 주위에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7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TV를 통하여 7억 명이 보고 있었다.


3... 2... 1 발사.

새턴 V 로켓. 마하1의 속도와 가까워져 우주선 주위에 구름이 생겼다.

우주선이 발사되고 3일 후. 그들은 달의 주회(둘레) 궤도에 올랐고 그들이  착륙하려는 '고요의 바다'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문제가 생겼다. 그들은 목표지점을 통과하는 시간이 4분 정도 빠른 것을 깨달았는데, 4분이라는 시간이 엄청 적은 시간 같지만 달 탐사에 있어 4분의 오차는  우주선뿐만 아니라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항법장치가 경보를 발령했고 관제센터에 있던 컴퓨터 기사가 이대로 강하를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암스트롱이 올드린을 촬영한 사진.

그들은 달 표면에 도착 하고 성조기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여러 관측 장비들(지진계, 온도계...)이 담긴 과학 실험장치를 설치했고 달의 샘플을  채집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기념으로 가지고 갔던 기념품을 달에 두고 옴으로서 모든 임무를  마무리하였다.

착륙선 이글의 다리에 붙여진 플레이트. 지금도 달 표면에 남아있다.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은 달 탐사를  계속하였는데, 1976년 소련의 루나 24호를 마지막으로 달 탐사는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그 후 1990년 일본이 '히텐'을 쏘아 올림에 따라 주춤했던 달 탐사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후 중국의 탐 탐사선 발사가 뒤를 이으며 달 탐사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우주계발 계획

한국에서는 2018년까지 탐사선(KSLB-ll)을 개발하여 위성을 우주에 올리고 2020년에는 달 착륙선을 보내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한국의 우주과학 발전. 기대해 보도록 하겠다.


곧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우주여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 말은 즉슨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상상들이 가까운 미래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과학은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인류는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으며 호기심에서  시작하였다. 50년 후, 과연 미래는 어떤 상상할 수 없는 세계로 바뀌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옛 전통부터 우리는 달에게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달은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이기도 하다. 늘 떠있고 우리의 삶에 녹아있는 달. 그가 앞으로 들려 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귀담아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천문학자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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