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대화를 나누다
“대충골프 탈출 후 ‘자연과의 대화’는 어떻게 펼쳐졌을까?”
대충골프 탈출의 성과는 사시사철 자연과 공감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스샷이 감소함에 따라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대충골프 시절에는 골프장 주변의 산하와 초목에 눈 한 번 줄 여유가 없었다.
스윙 후 공을 찾거나 다음 샷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필드를 오가다 보니 그럴 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하의 아름다움, 초목의 싱그러움, 꽃향기의 그윽함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더욱이, 골프코스와 주변에 펼쳐진 계절의 산수화를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였다.
대충골프를 탈출하니 '창공운해', '산천초목', '청풍화향'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계절마다 달리 치장한 모습은 대자연의 심오한 이치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미숙한 골퍼에게 건네는 대자연의 따스한 손짓과 정겨운 대화를 어떻게 다 형언할 수 있으리오!
필자의 유한한 글재간으로는 표현하기 역부족이나 용기를 내어 계졀별 대화록을 적어보았다.
[2021. 6. 필자 촬영]
[봄]
초봄의 태양, 그 속에 펼쳐진 산하와 초목의 향기는 겨우내 참아온 봄마실을 더욱 신나게 해주었다.
동면을 보낸 후 신춘의 양광과 산비탈의 신록을 대하는 순간 “바로 이것이다!”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새싹 가득한 동산에는 청아한 이슬로 푸르름이 더했고, 그 계곡에는 초록빛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처럼 아름답게 수놓인 코스에서 봄 라운드를 즐기다 보면 골프가 주는 묘미를 더 깊이 즐길 수 있었다.
[여름]
초하(初夏)의 새벽녘에 라운드 하러 교외를 달릴 때, 설레임으로 뒤척였던 전야의 선잠은 금새 사라졌다.
골프장으로 가던 중 농부가 새참에 탁주를 마시는 모습은 필자의 학창시절 농번기의 서정과 겹쳤다.
이상향의 아침 안개가 신선한 공기와 싱그런 초목을 타고 산자락에 다소곳이 고개를 내밀었다.
산새들이 일출에 늦지 않으려 날개짓을 서두루는 정경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가을]
창공(蒼空)에는 백운(白雲)이 수를 놓았고, 산허리 잎새에는 진초록이 시나브로 밀려왔다.
그곳을 지나는 가을 바람엔 국화 향기가 넘실댔고, 백구가 창공을 날 땐 필자도 함께 나는 듯했다.
그린으로 걸어가며 산자락의 국화에게 엄지척을 할 운치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멋진 시그니쳐 홀에서 산하와 나눈 미소를 사진에 간직할 여유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러한 운치나 여유가 없다면 어찌 고상한 골퍼라고 할 수 있으랴!
[겨울]
순백 산천의 정갈함과 겨울 대기의 해맑음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송백 위의 백설이 은빛 대지에 전하는 울림은 고아하기 그지없었다.
차가운 바람의 색다른 안내를 받으며 하얀 필드에 사각사각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때 페어웨이는 은빛 설원으로, 그린은 초록 마당으로 겨울과 초봄이 동화되어 있었다.
[2025. 1. 필자 촬영]
위와 같은 자연과의 정담 속에 자연, 필자, 골프는 이미 하나였다.
동반자의 라운드에 방해되지 않는 틈을 내어 찰나의 대화를 사진에 옮겼다.
그렇게 모아 온 사진이 무려 3만여 장에 달하였으니 소중한 골프 자산이 되었다.
그 당시엔 딱딱한 브런치에 눈요기와 쉼터가 될 줄 몰랐다.
동반자들의 행복한 표정은 대자연의 아늑함과 더불어 '대화형' 사진에 투영되었다.
처음엔 차렷 자세의 어색함이 넘쳤으나 점차 자연스런 자태로 익숙해 갔다.
다음 날 동반자들에게 카톡으로 라운드 소회와 대화형 사진을 보내주었다.
해맑게 웃는 자신의 표정을 발견하고 엄지척으로 답글을 대신했다.
그렇게 대충골프 탈출 후에 나눈 “자연과의 공감 대화’는 생각보다 귀한 선물이었다.
이러한 선물 외에,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도 적지 않은 행복감을 주았다.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