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 1일째. 움직임이 제법 크고 선명해진 탓에 태동의 느낌이 전과 달리 아주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뱃속에 뱀이 살고 있나 싶다가 발차기를 할 때면 아닌가 토끼인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됐든 이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건 여전히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가만히 누워 아기의 움직임을 느끼며 배를 보고 있는데 뿔룩불룩 배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호수의 물 표면이 일렁이듯 스물 거리다가 또 이불속에 숨은 발가락이 꼼지락 하듯 볼록거리는 모양새가 참 재미있다. 얼마나 컸으면 내 뱃가죽이 이렇게 들썩거리나 신기한 맘에 한참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때로는 겁나고 무서워 자신이 없기도 하다가, 아기의 움직임을 느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특히 침대에 누우면 가장 활발한데,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다는 말이 정말이구나 느낀다. 임신은 정말 축복이구나. 오직 엄마만의 특권이구나 싶은 그런 순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닐 때마다 졸졸졸 따라다니는 우리 집 흰둥이만 보아도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데, 우리 아기는 얼마나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면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늘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 어떻게 해야 아이한테 잘하는 걸까 생각이 많다가도 다 필요 없으니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걱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19주부터 시작된 태동, 벌써 한 달을 넘게 아이의 존재를 확인받으며 산다. 태동이 없을 땐 매번 병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입덧할 적엔 이렇게 못 먹는데 대체 잘 자라고 있는 건지, 움직임이 많았던 날엔 아기한테 무리가 없었는지. 내 몸 안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게 처음이라, 그러니 내 몸을 나 말고 또 누군가를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어색했다. 이젠 직접 당당히 표현해 주는 아기를 느낄 때면 안도감도 들고 재미있기도 하다.
달달한 걸 먹으면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진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정밀초음파를 보러 가던 날 아무 생각 없이 쌀과자를 꿀에 드음뿍 찍어 먹고 갔다. 그 바람에 도무지 가만히 있질 않는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부터 척추, 심장의 4개 방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무진장 애를 먹었었다. 그래도 여자아이라고 마지막 즈음에 볼에 살포시 갖다 댄 주먹 쥔 손이 어찌나 귀엽던지. 선생님께서 친절히 찍어주신 그 사진 덕에 우리 아버님은 금연을 시작하셨다.
못 먹는 것, 못 가는 곳 그렇게 못하는 것들 투성이어도 아기를 갖는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준다. 그게 다 괜찮을 만큼의 위안을 준다. 이건 희생도 아니고 그러니 후회도 없을, 소중한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