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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 soleado Sep 14. 2022

날씨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보고타야.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남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쌩초짜였다.



남미 대륙이라면 왠지 모를 신비감과 강렬한 태양, 살사 음악, 열대과일이 넘치는 유유자적의 땅일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러한 예상은 도착한 날 밤에 바로 깨져 버렸다. 밤 10시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보고타의 밤은 생각보다 너무 추워 가만히 있어도 몸이 벌벌 떨려 왔다. 날이 밝도록 거의 뜬 눈이었던 나는 다음 날 아침 열심히 챙겨 온 캐리어 속 얇디얇은 옷들을 바라보며 당장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고타는 해발 2,640m에 위치해있고 일교차가 엄청나게 심한 편이다. 일상적 일교차가 10도 이상이므로 농담 반 진담 반 하루 안에 사계절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첫 일주일 동안은 참 생경한 풍경을 많이 목격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맞은편에 서 있던 여자 두 명의 옷차림이 참 기이했다. 나란히 선 그녀들 중 한 명은 한여름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었고 그 옆 사람은 아주 두꺼운 겨울 점퍼를 끼어 입고 있었다. 내 옷은 한창 가을인데 말이다. 당시엔 이 그림이 뭐지 싶었지만 몇 개월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셋의 옷차림은 실은 매우 조화로운 모습이었다는 것을. 혹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사실 보고타는 연중 활동하기 좋은 최적의 기후를 자랑한다 (보고타살이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그중 으뜸은 단연 날씨라 하겠다 나라면). 적도 부근임에도 고지인 덕에 날씨가 덥지 않고 1년 내내 봄, 가을과 같은 상춘 기후를 띄고 있다. 때론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지만 습기가 없으니 마치 가을볕처럼 기분 좋게 쬘 만하다.



밤이 되면 춥다. 그렇지만 6-7도면 사실 초봄 날씨 아닌가. 음엔 영하 10도 이하의 한국 겨울을 30여 번이나 겪어 본 나에게 보고타 밤기온, 그 숫자가 뭐 대수랴 싶었는데 실상은 달랐다. 온열장판과 한 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무수한 밤들을 지나오며(차가운 이불속에서 몇 분간 몸서리치기 싫다면 10분 전 예열은 필수 센스), 오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저녁 약속을 생각해 종일 두꺼운 겨울 코트를 한 손에 걸치고 다니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야 말았다.






고도에 따라 기온이 천차만별인 콜롬비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순간 이동하듯 사계절 기후를 골라 여행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이곳 일상의 소소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오랫동안 고지 생활을 하면 없던 두통도 생기고 자도 자도 뭔지 모를 피로가 풀리지 않아 늘 고단한 얼굴을 장착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여기에서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저지대에 한번 가야 해.



보고타에서 간단하게 차로 4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더운 동네에 한인회에서 운영하는 별장이 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해 여러 번 다녀왔는데, Melgar이라는 이 도시는 해발 323m에 위치해 있어 연중 28-30도를 웃도니 참 다이나믹한 곳이다 여기 콜롬비아!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 한인 쉼터를 따로 만들어 이따금 부담 없이 내려가 쉬게 했으니 고지대 생활이 사람 몸에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 만하다. 내 친구는 내가 '저지대'라고 일컫는 그 말이 그렇게나 웃기단다. 근데 여기는 정말로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라파스, 키토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도시이니, 어디로 가도 저지대로 향하게 되어 있다!






축복받은 기후 덕에 연중 싱그러운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덤이다. 자연이 직접 물을 주고, 따사로울 만큼의 햇볕도 내리쬐어 주고,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그렇게 키우는 수목들을 그저 감상만 하면 되니, 그것도 1년 내내 어디에서든. 매일 걷는 도로 옆이 식물원 못지않으니 이따금 속은 썩어도 어쨌든 미워할 수는 없다 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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