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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pr 10. 2023

길을 걷다(4)

해파랑길

[해파랑길 48코스]

고성 거진항~가진항

총 16.4km

약 5시간 20분 소요

난이도 하

2023년 4월 8일(토) 맑음




이틀간 계속 내린 봄비로 기온이 살짝 떨어져 있었다.

내내 한낮은 더웠는데 또 걸으려 하니 추워질 건 뭐람.

그래도 흐리지 않으니 참만 다행이라 여기며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고성 중고등학교체육관에서 벌어지는 전국소년체전 배구 강원도 대표 선발전을 관람하기 위해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서둘렀다.

조카가 배구 3년 차, 중학생 선수인데 마침 걷는 길이 고성 코스라 응원차 들르기로 했다.

이제 동해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너무나 익숙하다. ^^

오늘 걷기는 추운 화천에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일 걷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컸다.

참고로 화천은 서울의 벚꽃이 다 떨어지고도 한 주나 두 주 뒤에 벚꽃이 만개한다.

서울에 살며 화천을 오고 갈 때는 벚꽃 구경을 남들보다 3, 4주는 더 길게 할 수 있어 좋았는데 이제는 서울 꽃구경을 못하니 아쉽다.



다른 날보다 서둘렀지만 서울로 외출하는 아들을 춘천역에 내려주고 가느라 결국 출발지 가진항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20분경이었다.

한가로운 가진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증샷을 남기고 출발.

딱 10시 30분이었다.



앞서 걸었던 45, 46코스와 다른 건 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걷지만 바닷가를 걷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워낙 군사지역이기도 하지만 소나무숲이 넓게 우거져있고 해수욕장 하나가 없다.

바다 근처인데도 내륙을 걷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간간이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가 있어 나쁘지 않았다.



조용한 마을길을 지나니 잘 뚫린 시골도로가 나왔다.

바람이 거칠어 도로변에서 휘날리는 리본이 안쓰러워 보일지경이었다.

그리고 바람이 거치니 청보리가 날리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청보리가 맞는지는 잘 모른다.

처음 남편과 난 '잡풀이 짙고 촘촘하게 잘 자랐네.'라며 혀를 끌끌 찼는데 자꾸 보이는 그것이 어쩐지 잡풀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본 후 '저것은 청보리다!'라고 결론 내렸다.

누구에게도 확인받은 것이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인적은 드물고 공사용 덤프트럭은 쌩쌩 달리는 도로를 1시간쯤 걸으니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남천교]라는 다리가 나왔다.

지도상으로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도록 되었지만 리본은 다리 위에서 나풀거렸다.

새로 만들며 경로를 수정한 듯 보였다.

다리가 아니었다면 바다로 흘러가는 하천길을 따라 20여분을 걸어갔다 작은 다리를 건너 다시 20여분을 걸어 나와야 하는 코스였다.

다리 덕분에 그 수고는 덜었지만 일단 우리는 고성군 간성읍에 들러야 했으므로 노선을 잠시 이탈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중등 배구에 대해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중등은 성인부나 고등부와 달리 25점 3세트로 승패를 가린다.

오늘 경기는 강원도 대표로 전국 소년체전에 나갈 팀을 가리는 3차전이었다.

조카가 소속된 팀은 [홍천군체육회]인데 평소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 우승을 수시로 하는 팀이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오늘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우리가 구경 가서 그랬나?

아무튼 실력이 많이 향상된 조카를 보게 되어 좋았지만 패하는 경기라 발걸음이 다소 무거웠다.



경기가 2세트 만에 끝나며 출전권을 따지 못해 우울한 고모네 내외분과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바닷가에 가서 회나 한 접시 먹어야겠다는 고모부님 때문에 우리는 처음 출발지였던 가진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정작 걸을 때는 근접해 보지 못했던 바다를 감상하며 물회와 생선구이를 먹었다.

아침에는 누가 이 항을 찾을까 싶을 만큼 휑하던 곳이 낮에 가니 관광버스까지 주차되어 있고 시끌벅적했다.

물회는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생선구이는 좀 실망스러웠다.

여러 가지 생선을 골고루 기름 쫙 빠지게 구워 줄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오로지 기름 잔뜩 먹은 가자미만 소복이 쌓여 서빙되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1시간 반을 걷기도 했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맞은 밥상이라 아주 맛나게 먹었지만 고모네 내외분은 입이 썼을 것이다.

그렇게 우울하신 두 분께 우리는 해파랑길 48코스 최종 목적지인 거진항까지 차로 태워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을 향해 걸을 수 있으니 되돌아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염치를 팔아치우고 말이다. ^^;;



배속을 든든히 채우고 거진항에 도착한 우리는 두 번째 인증샷을 남기고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아침과 달리 햇살이 뜨끈해져 외투는 벗어 가방에 넣어두었다.

모처럼 어깨 움츠리지 않는 걷기였다.

거진항에서 출발해 걷는 약 30분은 그냥 동네길이었다.

하지만 그 동네길 끝에 바다색이 아름다운 거진 해수욕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진11리해수욕장][거진해수욕장]은 빨간 거진항 등대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그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게다가 동해바다 같지 않게 파도가 잔잔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유흥가나 상업시설도 없다는 점이 좋았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차박하는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냥 바다를 보며 차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은 장소였다.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바닷가 중 단연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곳을 기점으로 모처럼 바다를 끼고 걷게 된다.

그런데 구간 구간 유실 된 도로 때문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우린 말 안 듣는 학생들처럼 통제선을 넘어 들어갔다.

넘어 들어오 길 잘했다고 생각할 만큼 풍경이 좋았지만 유실된 곳이 좀 위험해 보이기는 했다.



그렇게 소나무와 바다를 함께 즐기며 걷다 보니 반암리에 들어섰다.

반암리는 바닷가 앞에 형성된 마을이다.

집집마다 동일한 모양의 주소판이 붙어있는데 쓰여있는 문구가 궁금해 검색해 보니

[후리질소리 :  힘들고 고단한 육체노동을 이겨내기 위해서 불렀던 어업노동요]

라고 되어 있었다.

모르기는 해도 주민 대다수가 바닷일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이라 이런 예쁜 주소판이 생겨난 게 아닐까, 추측해 봤다.



반암리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바다를 두고도 바다를 볼 수 없는, 정말 철망을 쳐 놓은 군사지역을 걸어야 했다.

물론 너무 오래된 시설로 훼손되고 망가진 철망들이 아주 많았지만 일단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은 곳이니 아쉽지만 또 바다와 소나무숲을 지척에 두고도 농로를 걸어야 했다.

길게 이어지는 농로는 역시나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과 동행이다.

그리고 봄을 맞은 농토는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에 의해 곡식 심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논에 물을 대고 밭에 두둑을 만들어 검정 비닐을 씌우고...

이미 모종을 심어 바람에 이리저리 휘청이는 옥수수도 보였고 무언가를 심어 흙으로 잘 덮어둔 곳들도 보였다.

봄은 무어든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봄은 묵혀두었던 감정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버리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봄 길을 걷는 것이 즐거운 것 같다.



긴 농로 끝에 멋들어진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되었다.

전체가 소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산 아래 근사한 집이 한채 있고 그 집터를 크게 돌아 다시 바닷가로 나가야 하는 코스다.

산을 전부 품은 집이니 돌아가는 거리 또한 제법 길다.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던 건 소나무들이 일품이서였다.

어찌나 나무들이 아름답고 멋진지, 그 나무를 감상하며 걷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멋진 소나무를 뒤로하고 오른 길은 이제 벚꽃길이다.

바람이 너무 세서 다리 난간에 스치는 소리가 어마무시했는데 저 벚꽃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바람을 뚫고 걸었다. ^^

꽃 한 송이를 몰래 따서 머리에 꽂았다.

"나 머리에 꽃 꽂은 여자다! 조심해!"

그렇게 한바탕 웃고 고고!

북천철교를 건너라고 되어있는데 여기도 공사 중이다.

이걸 못 건너면 1.6km, 약 25분을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또 슬쩍 통제선을 넘는다.

보아하니 다리 몇 곳을 보수공사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보수가 얼추 끝난 것도 같았다.

휴~~ 안전하게 다리를 건너고 다시 통제선을 넘어 길로 나왔다.

오늘 통제선 참 많이 넘는다.



바람 쎈 북천을 따라 걸으니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윙윙 돌아간다.

멀리서 볼 때는 낭만적이었는데 가까이 가니 왕 큰 벌집이 있는 것처럼 윙윙 왕왕거린다.

소리 때문에 민원이 많이 생긴다는 말을 남편이 한다.

그럴 것 같다.

그래도 재생에너지인데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ㅜㅜ



윙윙 소리를 뒤로하고 접어든 길은 낯이 익는 길이다.

오전에 1차로 걸었던 남천교가 있던 바로 그 길 위다.

한번 쉬었다 걸어 그런지 이번 걷기는 생각보다 짧게 느껴져 놀랐다.

조금 걸으니 저 멀리 남천교가 보이고 식사 후 옮겨다 놓은 우리 차도 보이는 것 같았다.

고지가 저 앞이라고 생각하니 걸음도 가벼워졌다.



짝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는 청보리를 보며 그렇게 우리는 남천교까지 도착했다.

경기에 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고모네가 마침 전화를 하셨다.

다 걸었으면 저녁식사 함께하자고.

완주해서 좋고, 길이 좋아서 좋고, 바람도 좋고, 햇살도 좋았던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달려갔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저번부터 가보고 싶었던 꼬막비빔밥!

유명하다는 엄지네 포장마차로 향했다.

막상 가보니 지난번 갯배를 탔던 바로 그 앞이었다. 세상에.

갯배만 타면 아바이 마을이 있는 그곳.

지척에 두고도 전혀 모른 체 지나쳤었다고 생각하니 웃겼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걸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중앙시장으로 갔고 반건조 생선과 만석닭강정, 단호박식혜를 사서 사람에 끼여 걸어야 하는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중앙시장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쩜 매번 사람이 이리 많은지.



중간에 잠시 경로를 이탈했고 딴짓도 했지만 걸은 거리는 약 17km였고 4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 다음번 걷기 때는 반팔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나드리철이라 사람은 점점 많아질 거고 도로사정도 나빠질 거다.

그래도 오늘의 걷기는 알찼고 빈틈없었고 만족스러웠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전체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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