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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Jan 17. 2023

선생님한테 뺨 맞아본 적 있나요?

‘더 글로리‘가 19살 나를 안아주었다


당신은 선생님한테 뺨 맞아본 적 있나요?


그거 아세요? 성인 남성이 힘을 다해 10대 청소년 뺨을 때릴 땐 ‘짝’이 아니라 ‘퍽’ 이런 소리가 난다는 걸.

그날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 어느 날, 영어보충수업시간이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는 중년의 남자선생님은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날 같은 반 학생 한 명이 염색을 하고 학교에 왔고 선생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너 머리 염색했니?”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같은 분단 그 학생의 뒤에 앉아있던 아이를 지목합니다.


“니 눈엔 저 머리가 염색한 것 같니 아니니?. “


질문을 받은 아이는 망설이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만약 염색한 머리 같다고 답하면 친구는 손찌검을 당할 테니까요. 그다음 학생도 그다음학생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이어서 수업을 진행했고 마치는 종이 울리자 아까 대답했던 학생들을 따라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실복도에서, 학년 교무실에서, 본교무실에서 아이들은 뺨을 맞고 회초리라고 부르기엔 너무 두꺼웠던 지시봉으로 팔을 얻어맞고 엎드려서 맞고 한참을 맞아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염색한 머리를 모른 척하는 아이들의 대답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선생님을 속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굳이 학생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어야 할까요? 본인이 직접 염색한 머리를 지적했으면 될 일을 굳이 다른 친구들의 입으로 염색한 머리라는 대답을 듣기 원했습니다.




짐작했겠지만 그날 친구의 머리에 대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학생 중 한 명은 저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참혹하게 멍든 팔과 엉덩이를 보고 부모님은 할 말을 잃었고 그렇게 남은 겨울방학 보충수업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그만두지도 않았고 부모님도 학교에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런 선생님의 폭력에 가까운 체벌이 왕왕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입시학원 수업에서 그 선생님의 아들이 저와 같은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아들을 보는 순간,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그 폭력의 순간이 떠오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던 것 같아요.


“당신 아들이 낳게 될 아이도 나처럼 뺨을 맞고 두드려 맞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이십 년도 더 흘러서 요즘 유행하는 어느 드라마에서 그때의 나처럼 선생님에게 맞는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뻔한 드라마를 쓰는 작가라고 드라마작가를 흉봤던 나를 반성했습니다. 여전히 울고 있던 내 안의 19살 아이가 울음을 그쳐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종종 그때를 떠올립니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맞아요. 염색한 머리 같아요. 저 친구가 거짓말을 했어요”


이렇게 다시 대답한다면 상상하기 싫은 그 폭력을 당할 일도 없었겠죠. 하지만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모르겠다고 대답할 거라고. 나의 한마디 때문에 눈앞에서 친구가 잔인하게 맞는 장면을 보는 것보단 그냥 다 같이 맞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실제로든 드라마나 소설 속이든 존재한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그냥 바로 쓰러지지 못한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질문 자체를 하고 아이들을 때리며 자신의 분을 풀던 그 교사가 잘못된 거라고. 유행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나를 안아 주었습니다. 이제 그 과거에 너를 가두지 말라고.



지나온 시간 찰나라도 당신이 후회했길 바랍니다. 당신에게도 소중한 아이가 있잖아요. 우린 모두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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