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것

삶의 시작과 끝이 보여요.

by 흐르는 물

나는 사실 건강하지 않다.

'골골 백년'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시름시름'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람은 몸에 큰 병이 없어도 죽는다.

생명 유지에 절대적인 장기가 멈추거나, 기력이 다하면 그렇게 된다.


최근 몇년 사이, 나에게는 생각과 마음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삶을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포기해서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참 나에 맡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살기 위해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미련 없이 놓았다.


가장 먼저 가슴이 투명해졌다.

애초부터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맑아졌다.

그 다음엔 생각과 사물이 투명해졌다.


그렇게 모든 괴로움과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 '나'가 있었다.

빛나는 내가 있었다.

나 조차 몰랐던 고귀하고 아름다운 내가, 당당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관계 방식도 바뀌었다.

그동안 관계해왔던 인연들이 스스로 재정립되었다.

정리된 인연들에는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전과 다름없이 같은 자리에 있지만, 인연을 다한 관계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붙잡지 않는다.

마음이 무척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리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에게 여운이 긴 인연이 하나 있다.

여전히 눈에 밟힌다.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이 그 끝을 잡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아직 어린 내 딸에게 '시간'을 주고 싶다.

엄마의 피부에 닿는 감각 없이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반백 년을 넘게 살아오며, 유난히 아팠던 일들을 글로 적어 흘려보냈다.

여기에 올린 나의 이야기들은 모두 24년 마지막 달, 비공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발행한 것은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쓰여지는대로 쓰고 있다.


앞으로 내 육체가 얼마만큼 더 버텨줄지는 모른다.

나는 지금도 계속 치료를 받으며 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슬프지 않다.

내 안에, '나'라는 보석을 만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