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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Song Jun 02. 2022

연구교수에서 엄마로만 살기로 한 용감한 엄마의 도전기

시작글

나는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학사는 생명정보공학을 전공하고 의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생명과학으로 석사를 취득하고 의생명공학 전문대학원에 임상의과학과에서 박사를 전공했다. 한 학기도 쉬거나 휴학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실 세팅 멤버였고, 29살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곧 lab head가 되어 지도 교수님과 연구실을 이끌어 왔다. 2년의 post-doc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연구 조교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연구 기간 동안 10편의 논문에 참여하고 12편의 논문의 주 저자로 참여하였다. 국가 R&D 과제도 책임자로써 수행하였다.


모기도 손으로 잡지 못하는 나는 어느 순간 쥐를 아주 쉽게 해부하고 부검하며 질환 치료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공인 자격증인 동물실험기술자격증(1급)을 취득하기도 하였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 같이 석사를 하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식 이틀 전에 박사 수료 시험을 보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


박사학위 졸업 후 바로 가지려 했던 아이는 쉽게 우리 부부에게 와주지 않았고 3번의 인공수정과 5번의 시험관 시술만에 아들 혀니가 우리 부부에게 와주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현이 돌잔치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 랑이는 아주 편안하게 우리 부부에게 와주었고 20개월 터울로 랑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엄마로서, 연구자로써 둘 모두를 완벽하게 해낼 순 없었다. 사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는데, 첫째 아이 혀니의 언어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내 아들이? 느려? 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얼마나 힘들게 나에게 와준 아이인데 말도 안 돼..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모든게 내 잘 못 같았다. 일하면서 아이에게 집중을 덜 해줘서 그런가? 어린이집에 너무 빨리 보낸 것인가? 하다하다 임신했을 때 내가 먹었던 약 때문인가? 아니면 시험관시술로 태어난 아이여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시간을 내어 아이 언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언어치료 시작하니 이 불안감은 더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원만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언어발달지연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드라마틱한 발전이 보이지는 않고 다른 친구들의 발전속도는 너무 빠르다고만 느껴졌다. 


유치원을 가지 전에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혀니가 3돌이 되어 갈 때쯤..나는 결국 일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았다. 아니 너무 힘들었다. 내가 어떻게 달려온 길인데 단 하루도 연구를 잊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출산한 날에도 나는 R&D과제 검토를 했다.  내가 세팅한 이 연구실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심적으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나로서 살 수 있을까? 

나 고작 35살인데.. 내 일을 이쯤 정리할 걸 알았으면 이렇게 치열하게 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많은 눈물을 흘리고 일을 정리했고, 나는 첫째 아이 혀니에게 집중했다.


일을 그만 둔지 1년 반정도 되었다. 첫째 아이 혀니는 어느덧 6살이 되었다. 

혀니는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37살이 되었다. 많이 힘들었고 사실 지금도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잘 살아가려 방법들을 찾고 있고 그 중 몇 가지는 이미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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