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구푼 Jul 15. 2022

몰아세우고 몰아붙이는 것의 쓸모


  그러고보면 되는 것이 없었던 한 주였다. 원래였으면 가게를 닫았어야 할 월요일에 영업을 한 것 부터가 무리수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심지어 다음날이 휴일도 아닌데 화이트데이를 챙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지나가듯 이야기만하고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사장님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게를 열기로 했고, 결과는 참담할 정도의 매출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수요일부터 직원과 스탭들 몇몇이 연이어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고 말았다. 고심해서 짜 놓은 스케줄 이곳 저곳에 구멍이 뚫렸다. 목요일의 개인 휴무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손이 한참이나 모자른데 예약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결국 토요일 예약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후로 최다 건수가 몰렸다. 담담하게 예정되어버린 9일 연속의 험난한 근무를 앞두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건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담배가 조금 늘었다.

  타이밍이라는 말은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을 때도 쓰지만, 전혀 반대일 경우에도 쓰인다. 아무래도 타이밍이 정확하게 일치한 순간을 특별히 여기게 되는 것을 보면, 공교롭지만 일상은 늘 미묘한 어긋남 위에 있는 듯하다. 일상적인 것은 무의식중에 지나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가끔 이러한 어긋남이 켜켜이 몰리고 쌓여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으레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몰아세우게 된다.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 것은 특정한 방향'만'이 필요해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만큼의 일을 해내기 위해서 자신에게 거는 자기암시와 비슷한 것이다. 몰아붙임은 주로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동한다. 해야만 한다,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이미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방향이 있고, 다른 방향을 검토할 여력은 없는 상황에서, 지금 가고 있는 이 방향만이 맞는 방향이라는 확신이 억지로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몰아세우게 될 때는 무언가를 탓하고 싶어질 때다. 모든 결과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것이 잘못된 결과일 경우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여건이 좋지 않아서라는 접근은 그나마 건강하지만,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탓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 몰아세움은 잘못된 상황에 빠지고만 지금 당장의 자기자신의 상태를 고정시켜 버린다. 그래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버리고 말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몰아붙이고 몰아세우는 것은 언뜻 경계해야만 할 것 같은 뉘앙스를 지니지만, 그것이 '스스로'에게 한정될 때에는 의외로 쓸모가 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좁아지는 시야는 그 상황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그것이 비록 그 이후의 전개를 고려하지 못한 것일지라도, 때로는 자기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를 돌파하게 하거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몰아세우게 되는 것은 탓할 무언가가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기댈 무언가가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로소 기댈 무언가가 생겼을 때 그것을 소중히 대할수 있게 한다. 어쩌다 바라본 누군가의 표정, 어쩌다 마주한 풍경, 우연히 들은 한마디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마른 땅이기에 단비가 반갑다.

  타이밍이라는 말은 거짓말 같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을 때도 쓰지만, 전혀 반대일 경우에도 쓰인다. 버거울 정도의 어긋남 앞에서, 우리는 타이밍 좋게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몰아세운다. 그것은 포기나 도피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나가겠다는 무의식적인 생존전략이 아닐까. 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다가도, 언젠가는 모든 것이 들어맞는 타이밍이 한 번쯤은 올 것이라는 소소한 희망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겨울은 늘 끝나고 봄날은 온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한 주의 일요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평일에는 다른 회사로 출근하는 주말 스탭이 금요일에 퇴근을 하고 나와줬고, 토요일엔 한 스탭이 설거지만이라도 도와줄 친구 한 명을 수소문해서 데려와줘서 홀은 어찌저찌 굴러갔다. 혹시 몰라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잠도 충분히 자면서 컨디션을 관리한게 효과가 있었는지 별다른 실수 없이 빠릿하게 움직였다. 손님 하나 하나를 신경 쓰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어서 음료도 생각보다 많이 밀리지 않고 금방 만들어서 서빙할 수 있었다. 어떤 손님이 SNS에 올린 사진 속에,  바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내가 잔상만 찍혀있는 것을 스탭들과 다같이 보면서 함께 웃었다.

  그렇게 버텨내고 맞이한 일요일 마감 직전,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나가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손님이 찾는다며 스탭이 뛰어왔다.  바에 앉아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술을 마시던 커플이었다. 칵테일 만드는 걸 흥미롭게 쳐다보길래 몇 마디 건내면서 술 이야기를 하고, 안주 삼을 크래커를 꽃으로 가볍게 꾸며 내어준 것이 전부였다. 가게 안으로 돌아가보니, 사실 자기네들이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가게에서 내 덕분에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간다며 팁을 주고 싶은데 괜찮냐고 물어왔다. 그런데 지금 현금이 달러지폐밖에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표정과 마음에 지난 9일간의 피로가 녹아버렸다. 전혀 문제될 게 없고 감사하고 기쁘게 받겠다고 대답하자 20달러 지폐 한장을 내밀며 꼭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맛있는 걸 사 먹겠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면서 가게를 나서는 손님들을 배웅했다. 지폐에 그려진 이름 모를 인물의 표정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2022년 3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