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 “이번에도 내가 나빴습니까?“
쿵 쿵 쿵.
헉 헉 헉.
한 남자가 머리로 벽을 힘껏 부딪힌다. 소리는 그가 딛고 선 바닥을 타고 내려 또 다른 남자의 침대 옆을 울린다. 두시, 세시, 여섯시. 울림은 한 번을 거르지 않고 또렷이 남자의 잠을 깨운다. 장면은 넓게 확장되어 두 집의 단면을 비춘다. 울부짖으며 벽에 머리를 받는 위층 남자의 리듬에 맞춰, 아래층의 남자는 물이라도 끼얹은 듯 벌떡 일어나 숨을 몰아쉰다. 쿵 쿵. 히익! 헉 헉. 한 사람의 비명은 다른 사람의 악몽이 되고, 객석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것 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네” 꿈결에 찰리 채플린이 말한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쿵 쿵 쿵.
오늘도 대답은 듣지 못했다.
위층에 평범하지 않은 아저씨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몇 달 전 일이다. 여느 때처럼 담배를 물고 문을 연 어느 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집 앞으로 경찰관과 구급 대원들이 가득했다. 보호복까지 갖춰 입은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분주하게 계단을 올랐고, 앰뷸런스와 경찰차의 시끄러운 조명이 쉼 없이 골목을 채웠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는 동안 들려오던 위층의 소음이 복선처럼 머리를 스쳤다. 나는 잠시 원하지 않았던 큰 사건에 난데없이 휘말리는 불운한 주인공의 심정이 되었다.
간헐적인 고성이 한동안 위층에서 오갔다. 이내 빈 들것을 다시 차에 실은 구급 대원들이 먼저 떠나고, 경찰관들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잠시 소란이 이는 듯하더니 곧 마무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줄담배를 태우며 열심히 상황을 살폈지만 끝내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시 집어넣으며, 찝찝함을 뒤로 한 채 문을 닫았다. 이미 겪어본 몇몇 터프한 동네들과의 유사한 특징들을 인지하고도 저렴한 가격에 스스로 선택한 위치였다. 큰 불평은 없었고, 무엇보다 이제 슬슬 목이 아파왔다. 모두가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뿐, 세상은 원래 감수할 수 있는 만큼은 소란스러운 것이라고, 침대로 돌아가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앞으로는 외출할 때 문을 잠그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역시 문은 잠그지 않았다.
머지않아 소리로만 인사를 나누었던 윗집 아저씨의 실루엣을 마주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비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아저씨는 커다란 가방과 함께, 우리 집 현관 바로 위에 그림자로 자리하고 있었다. 첫 만남임에도 나에게 양아치 새끼라며 마구 고함을 쳤다. 골목 건너편을 보자 종종 인사를 나누던 아래층 외국인 친구들이 겁을 잔뜩 먹은 채 원룸 주차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다급한 눈빛을 보내기에 얼른 그들에게 내려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참 자고 있는 중간에 별안간 아저씨가 현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난동을 피웠다고 했다. 재빠르게 방문이라도 잠갔으니 다행이지 큰일이 날 뻔했다며, 빨리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 사정을 듣는 동안에도 아저씨는 나와 친구들에게 번갈아 가며 욕을 퍼부었다. 처음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라고, 이것 참 이대로는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친구들은 질색했다. 아마도 경찰들을 잔뜩 보았던 그날 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한편으로 아저씨를 경계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다양한 동작이 어우러진 다소 희극적인 재연이었다. 방에서 두려움에 떨던 친구들은 아저씨가 잠잠해진 뒤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지만, 대문 뒤에서 기다리던 아저씨가 냅다 주먹을 휘두르는 바람에 빗속을 전속력으로 달려 골목 끝까지 도망쳤다가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저씨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주저앉은 채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확한 뜻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언가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일단 우리를 향한 위협을 마치고 나면 곧이어 2층 현관을 두드리며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식이었다. 우리를 향한 것과는 다르게, 그것은 분노보다는 절규에 가깝게 들렸다. 어쩌면 무언가 호소를 하는 듯하기도 했다. 새벽 두시에 이 소동을 벌이는 사정이 너무 궁금했지만, 아저씨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자꾸만 극적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