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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키온니 Oct 22. 2022

배고플 땐 라디오를 들어요.

김미숙의 가정음악

라디오는 카타르에서 거주하며 듣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틈틈이 듣기는 했지만 외노자의 신분으로 듣는 한국 실시간 라디오는 나에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시차와 장소는 다르지만 카타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실시간 한국 현지시간에 맞춰져 보내오는 사연들은 나도 그곳 어딘가 혹은 그들과 함께 있는듯한 느낌을 주어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평소 하루 2끼를 먹던 나는 한국으로 비행이나 휴가를 오면 아침부터 돼지 런 하게 꾸역꾸역 4~5끼 먹으려고 식탐을 부리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한국땅에 랜딩 한 순간부터 식탐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내 땅에 들어선 순간부터 심리적인 마음의 평온함이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먹지도 잠들지 않아도 배부름과 졸림은 잊은 각성 상태를 유지하다 도하 땅으로 랜딩 하는 순간 다시 심한 허기가 밀려온다.


이상태가 여러 번 반복되고 나서야 알게 된 거다. 이것은 내 진짜 배고픔이 아닌 마음의 헛헛함, 심한 허기짐이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것저것 해보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곳은 나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 외노자를 위한 소통의 창이었다.


한국에서는 낮시간을 제외한 오전, 오후 시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많이 들었는데 카타르는 6시간의 시차 때문에 보통 오후 2~3시부터 듣기 시작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과 공감을 많이 얻어갈 수 있었다. 라디오를 즐겨 듣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눈뜨기 시작하는 아침부터 켜놓기 시작한 클래식 라디오 방송은 이제 그냥 나의 일상이 되었다. 더 일찍 시작하지만 보통 8시부터 밤 12시까지 시간대마다 좋은 코너들이 많아서 하나도 놓치기 싫을 정도이다.


그중 내가 가장 애정 하는 방송은 #김미숙의 가정음악,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할 수 있는 거라곤 집 앞 산책 정도의 운동과 그리고 그 운동 시간에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 더욱이 코로나에 취업마저 물 건너갈 뻔한 상황에 우울의 늪에 빠지기 싫었던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 암투병중이신 분께서 수술받는 당일 "소풍 가는 기분으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보내주신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비록 팬데믹이 휩쓸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건강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였다. 영원히 다시 돌아올지 모를 그 순간을 걱정과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대신 차라리 즐거운 일이라 여기며 덤덤히 써 내려간 사연,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 어쩜 저리 태연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경외심을 느꼈다.


부디 건강히 완쾌하셨길 바란다. 이 사연뿐 아니라 가정음악은 사람 사는 소소한 사연들을 배경으로 어렵지 않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어 나의 하루를 즐겁게 시작해준다. 특히 어머니에 관한 사연이 많아 산책 중이던 나를 민망하게 많이도 울렸다.


팬데믹으로 원하던 회사의 입사가 미루어지고 가끔씩 세상살이가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굳건히 버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였던 라디오 프로그램, 기다렸던 회사의 입사 계약서를 쓰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탔던 날도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별일 없으면 나는 계속 라디오를 듣는다. 언젠가 정말 고맙고 계속 고마울 거라고 꼭! 라디오 사연도 보낼 거다. (사연은 짧아야 하는데 구구절절 이렇게 길어질까 봐 아직 못 보내지만) 세상에는 감사할 일들이 참 많고 또 그래서 살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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