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결코 숨기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강렬하고도 직설적인 그들의 계단 <기생충>
아무나 올라 갈 수 없는 계단
기생충은 계단이 돋보이는 영화다. 기우, 기정이 동익의 집으로 들어갈 때 올라가는 계단, 동익이 현관에서 거실로 올라오는 계단, 동익이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비가 쏟아지던 날 기택이네 가족이 내려갔던 계단, 동익이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 이 영화는 공간의 구분을 계단으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의 계단은 현실과는 다르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쉬워도 올라가는 것은 맘대로 할 수 없다. 영화의 엔딩에서도 지하실로 내려간 기택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기택의 모스부호 편지를 해석한 기우는 자신이 돈을 벌어 그 집부터 먼저 사겠다고, 아버지는 계단을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기택의 대사인 인생은 계획처럼 되는 법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기우의 계획은 정말 머나먼 꿈, 또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는 여자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나눠놓은 지상과 반지하, 지하를 제 집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인물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계단을 오르는 여자, 기정이 있다. 기정이는 여러모로 반지하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동익이네 가족이 캠핑을 갔던 날, 기우는 동익의 집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기정이를 보고는 이 집과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기정이는 기우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송이 생일 번개날 다혜에게 여기에 자신이 잘 어울리냐고 묻던 기우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기정이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집이 잠겼을 때도, 기정이는 기택과 기우와는 달랐다. 박스에 가져가야 하는 물건을 챙기는 기택, 산수경석을 끌어안은 기우와는 달리, 기정이는 그 집에서 챙길 것이 없었다. 똥물이 역류하는 변기 위에 앉아 기정이 한 것은 천장에 숨겨놓은 담배를 피는 것 이었다. 그 담배마저도 그 집에도 모두 태우고 집에서 나오는 기정이는 그 반지하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는 인물인 것이다. 기정이는 그 집에 어울리는 사람도, 미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또한 기정이는 다송이의 생일 번개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다송이의 트라우마 극복행사라는 이름아래 기정이는 케이크를 들고 그것을 다송이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전날 체육관에서 잠을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 기우, 기택과는 달리 기정이는 생일 번개에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어 보인다. 급하게 모였는데도 다들 쿨하고, 자연스럽게 행동 하는 사람들. 기정은 기택, 기우보다는 그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린다. 그에 비해 멍해 보이고 눈 밑이 퀭한 기택과 기우는 기어이 일을 내고 만다. 지상으로 나온 근세는 그런 기정이의 모 습을 보고는 기정이에게 칼을 꽂아버린다. 근세에게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지는 동익이 네 가족보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자꾸 선을 넘으려고 하는 기정이가 더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결국 근세에 의도대로 각자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기택은 지하실로, 충숙과 기우는 살던 반지하로.
솔직하고 잔인한 그의 화법
봉준호 감독은 결코 숨기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하고 자극적이게 설정한 그의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등장했고, 퇴장했다. 잔인하게 공간을 구분했고, 그 공간들을 잇는 계단이란 장치를 설정했다. 하지만 그 계단 또한 고루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봉준호의 계단은 누구나 오를 수 있었지만 아무나 오를 수는 없었고, 내려갈 때 맘대로 내려가도 올라올땐 맘대로 올라 올 수 없었다. 인물들이 있는 곳이 지상이든 지하든, 계단을 내려가면 그보다 더 어두운 세상이, 계단을 올라가면 상상만 했던 꿈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이러한 수직구조를 완벽히 표현한 봉준호의 계단은 강렬하고도 직설적이었다. 계단은 곧 인물들의 위치를 증명했고, 위치를 거부한 자는 죽임을 당했다. 봉준호의 계단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제자리로 올라가야함을, 또는 내려가야함을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