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나는 제주도로 도망왔다.
2021년 5월 나는 제주도로 도망을 왔다.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지 두달째 되는달 이었다. 엄마랑 같이 여행하기로 한 제주도를 혼자온 것이다. 누가보면 불효녀라고 말할 일이지만, 그때의 난 너무나도 억울하고 서러웠다. 2020년 8월 엄마가 암선고를 받았다. 공부를 하고싶은 나였지만, 어려운 상황인 우리집, 집에 큰 돈이 필요할까 전화를 받은 다음날 바로 회사 면접을 보고 운이 좋게 합격했다. 8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주6일, 주7일 쉬지 않고 일했다. 엄마의 수술과 회복이 반복이 되고, 2021년 4월 엄마의 암은 재발했고,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나는 바로 퇴사를 하고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얼마안남은 시간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싸움은 시작되었다. ‘너는 엄마가 짐이지’, ‘엄마 때문에 공부 못했지’ 아픈 엄마는 너무나도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엄마집에서 한달간 생활을 하고 나는 도망쳤다. 내가 간곳은 엄마와 약속한 제주도였다. 5월 나는 홀로 제주도로 향했다. 막상 온 제주도에서 나는 어떤걸 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중에 한라산 등반을 하고온 사람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겁도 없이 혼자 한라산등반을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코스는 예약을 진행해야해 한라산 영실코스 등반을 하기로 했다. 그냥 올라가면 되는거 아닌가 했는데, 알고보니 나는 긴 등산을 해본 적이 없는 등산 초짜였다. 사람들이 다 쉽다고 해서 올라가본 한라산 영실코스 나에게는 첫 긴 여행이었다. 중문사거리에서 240번 버스를 타고 영실 매표소로 향했다. 가는길도 뱅글뱅글 길이 돌아 멀미가 심하게났다. 영실 매표소에 도착해 올라 가는길, 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입구까지 40분가량을 계속 걸어야 했다.
캡모자 하나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나는 등산장비도 없이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다. 김밥한줄, 초코바하나, 이온음료를 가방에 넣고 올라가는 산행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초반 이 한라산을 내가 정복하리라 하는 마음, 죄책감을 떨쳐버리려 속시원하게 소리지르자 마음을 먹고 오르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빨라지고 사람들을 재치고 뛰어갔다. 그때였을까,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말을 거셨다. ‘학생, 너무 빨리 올라가면 지칠거에요. 등산이란 느려도 되니까 차분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올라가야해요.’ 숨이 가파오르는 때라 그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쫙 풀려버렸다. 초반부터 힘을 다 쓴 참이어 내려갈까 고민도 했다. 중간에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올라가려면 한참이다.’, ‘힘들다’하는 말을 들었지만, 나보다 작은 꼬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산행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병풍바위가 보였다. 이제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이 큰섬이 작은 미니어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아픔도 멀리서 보면 작아보이겠지, 생각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내 마음이 정화되는듯도 했다. 너무 힘든 첫 등산 속 그동안 주6일, 7일 일하던 내 모습이 서러워지기도 했다. 힘든 산행 이었지만, 챙겨온 초코바는 더 달디 달게 느껴져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제 그만할까 할때쯤 한 아주머니가 내려오시며 말을 걸었다. ‘학생 힘들죠? 지치죠? 쉬었다가요. 근데 얼마 안남았으니까 꼭 정상에 올라가봐요.’ 아주머니의 힘들죠? 하는 말이 등산이 아닌 내가 힘듬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힘을내 길을 올랐다. 병풍바위에서 50분쯤 더 걸었을까
한라산의 5월 정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위에는 털진달래꽃이 만개에 분홍색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팍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이 난건 다름이 아니라 너무나도 미웠던 엄마였다. 엄마에게 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내가 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엄마가 너무 미웠는데, 여기 꽃밭이 너무 예쁘다. 엄마랑 보고 싶어서 엄마한테 전화걸었어.’, 그 때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엄마는 괜찮아, 괜찮아 하는 말만 몇 번을 반복하고 전화를 끈었다. 사람들이 4시간이면 오르내린다는 길을 5시간을 걸쳐 다녀온 영실코스
제주도에서 4~5월 만개를 한다는 털진달래 꽃은 모진바람에 잘견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꽃을 봐서일까, 엄마는 암을 이겨내고 잘지내시고, 우리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다. 너무 힘들어서 도망 온 제주도, 이는 엄마와 나의 마지막 여행코스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장소로 다시 기억되었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 페이스를 유지하고 가다보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끝이 보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볼 수 있음을 이번 제주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