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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아닌 제인 Jul 25. 2024

명랑한 명여사의 치매 수첩

1-10. 나 돈 잃었는데 가긴 어딜 가!!!!

시어머니의 평일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기상 후 세수와 식사-데이케어-귀가-TV시청 및 휴식-취침이 전부다

굳이 치매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낮 시간 일과(데이케어)를 제외한다면  대한민국 여느  80세 이상 고령의 어르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다만 우리 시어머니는 약간의 취미 활동이 곁들여진다.

효자 아들은 술 약속등으로 늦게 집에 오는 경우를 빼곤 저녁 식사 후  와이프를 동원하여 어머니와 고스톱을 쳐드린다

앞서도 말한 바 있듯이 당신 인생의 중후반을 함께 했던 고스톱인데  이제 밖에선 할 수 없으니 집에서라도 즐기시라는 거다. 고스톱 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삼십 분만 쳐도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픈 중노동이다. 불편을 줄이고자  사각 교자상 위에 군용 담요를 깔고 캠핑의자에 앉아서 친다. 그나마 훨씬 수월하다


삼 년 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셈이 어찌나 빠르신지 플레이와 돈계산을 하실 때면 '치매노인네가 맞을까'싶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꽤 진행된 병 때문인지  거의 그림 맞추기 수준이다

그 와중에 승부욕이라는 본능은 사라지지 않아 아들이나 며느리가 먼저 났다(이겼다)고 하면 '나도 피(패)가 이렇게 많은데?' 하며 아쉬워하거나  광박, 고박, 피박등으로 더블점수 계산을 하면(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스톱 룰^^)  '어느 동네 방식이냐'라고 의아해하신다. 물론 당신이 그렇게 나면 꼭 배로 챙겨가신다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노시는데 한 30번 이상 본전이 얼마냐고 물어보신다.  '어머니 본전 만원이요'라고 해도 이젠 제대로 셈을 못해서 얼마를 잃었는지도 계산 못하고, 백 원과 오백 원 짜리도 헷갈려하신다. 지폐에는 글자가 있으니 천 원, 오천 원이라고 하시지만 돈의 크기를 잘 아는 상황은 아닌 듯싶다. 화투패 보는 것은 뒷전이고, 지폐는 선생들이나 대왕님 얼굴이 위로 향하게 해서 어슷하게 겹치고 동전은 크기별로 정리하시는데 온 정신을 쏟으신다.(그 얼굴을 향해 지갑 잘 지키시라고 당부의 말씀도 하신다)


돈을 좀 딴 것 같은 날에는 그만 치자고 하면 쉽게 그러자고 하시는데, 돈을 잃었다 싶을 때는  꼭 말씀하신다

"나 돈 잃었는데? 가긴 어딜 가? 그냥 가기만 해 봐 ~~. 빤쓰를 벗겨 버릴 테다"

그러고는 아들 손에 있는 돈을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으로 낚아채서 좋다고 깔깔 대신다(물론 아들은 그러시라고 일부러 손에 쥐고 있기는 하지만)


시어머니는  고스톱을 칠 때마다 승패에 상관없이 돈을 따신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 물건들 덕에 삼년간 관절을 무사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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