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스위치는 끄라고 있는 것
치매 증상 중 하나가 강박이다.
원래 덜렁대는 편이셨던 시어머니는 나날이 꼼꼼해지시는 중이다.
모든 창문, 방문, 현관문을 닫고 또 닫고 하신다.
구옥주택인 우리 집은 단열에 취약해 겨울에 춥고 여름엔 덥다. 요새 같은 날씨엔 시어머니 덕에 창문조차 맘 편히 못 열어 따숩기가 찜질방 저리 가라다.
문 외에도 강박을 보이시는 것 중 하나가 불빛과 콘센트다.
형광등 켜고 끄는 것에는 크게 강박을 보이시지는 않는데 조그만 불빛이 켜져 있으면 기어이 꺼야만 직성이 풀리시나 보다.
집안에 조그만 불빛이 뭐가 있을까 둘러보시라. 별다른 것은 없다. 단지 냉장고 표시등, 멀티탭 스위치등 가전제품에 달려있는 온/오프등이 있을 뿐이다.
꺼놔도 크게 지장 없는 보온밥통속 밥은 다시 데워먹으면 그만이고 뽑힌 충전기는 다시 꽂아 충전하면 된다.
하지만 김치냉장고, 보일러 등이 꺼지고 냉장고 온도 세팅이 달라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밤에 집안을 배회하시며 창문 닫힌 것 확인하고, 새 나오는 불빛들에 다가가 코드를 뽑거나 꺼버리신다. 한겨울에 보일러조절기를 꺼버리셔서 집이 냉골이 되다 못해 온수배관이 얼어버리는 바람에 효자아들은 드라이기를 들고 시원한(?) 보일러실에 들어가 30분 정도 바람을 쐬어 주어야 했다.
데이케어 가느라 집을 나서기 전에 당신 방 TV코드,셋톱박스등 모든 콘센트를 다 뽑아버리시고는 나중에 TV가 고장 났는지 화면이 안 나온다고 하신다.
결국 테이프로 모든 표시화면은 다 가려버리고 자주 뽑으시는 김치냉장고와 음식물처리기 콘센트는 실리콘을 쏴서 붙박아 버렸다.(그 이후에 실리콘을 죄다 뜯어놔 다시 한번 반복했다 )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얘기한다.'저렇게 꺼버릇 하시다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실 경우 치료기기 같은 것도 간호사 몰래 꺼버리면 어쩌나'라고..
까페나 식당 조명을 보며 낮부터 켜놓은 것을 아까워 하시는 시어머니의 스위치 내리기는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 근검절약 하시며 사시던 알뜰한 습관이 발현되는 중이라고 믿고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