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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빛 Dec 02. 2024

하루와 인생

일어남과 잠듦, 삶과 죽음

하루는 어쩌면 인생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루가 시작하고 끝나는 것은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과 닮아 있다. 다만 하루와 인생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 가지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우리가 정할 수 있지만 태어나고 죽는 시간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른 새벽, 하루가 시작됐다. 바다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바다로 향하는 길은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로 가득했다. 넘실거리는 바다에서는 짭조름한 냄새가 났고 그 위를 기러기 떼가 유유히 날아다녔다. 갓 잡은 생선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 그 풍경이 자꾸만 맴돌았다. 인생에도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때로는 눈부신 장면들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물들인다.


바다의 여운을 뒤로하고, 하늘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표를 끊고 타러 가는 길 문득 후회됐다.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괜한 도전은 아니었을까. 바로 앞에 타고 온 사람이 조언해 줬다. “밑은 보지 말고, 앞만 보면 괜찮아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자전거를 탔다.

처음엔 무서워서 눈조차 뜨지 못했다. 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그러다 기분 좋은 살랑거림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중간 정도 온 지점이었다. 밑을 보면 절대 나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대로 앞만 보고 조금씩 나아갔다. 너무 멀리 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결국 끝까지 달려갔고 뒤돌아보니 그 길은 의외로 짧았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토록 길고 험난하다고 느꼈던 여정이 막상 돌아보면 짧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사람이었다. 그의 딸이 나와 비슷한 또래라 마음이 갔다며 빙그레 웃었다. 작은 호의와 친절이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주었다. 살면서 생각지 못한 귀인을 만나는 법이다.


움직임이 더딘 탓에 계획했던 모든 곳을 가지 못했다. 빠른 관광과 여유로운 쉼 사이에서 선택한 건 후자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을이 내 눈앞을 장악했다. 하루가 저문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생도 이렇게 저무는 날이 오겠지. 노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어느새 새까만 어둠만이 펼쳐졌다. 언젠가 삶의 끝도 갑작스레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하루는 돌아온다. 돌고 도는 하루는 마치 윤회와도 같다. 비슷한 삶이 반복되고 가끔 운이 좋으면 조금 다른 색다른 날을 살게 되겠지. 결론은 뻔하다. 하루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

사이렌 같은 알람 소리가 울린다.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다. 끝이 오지 않았으니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지. 언젠가 끝이 찾아오더라도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그게 하루고, 그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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