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게 아주 큰 상처를 남긴 남자에 관한 이야기. 그 얘기 끝은 언제나 ‘행복했었다’로 끝나거나 ‘행복하길 바란다’로 끝났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인생이 거의 파멸할 뻔한 나쁜 기억을 안긴 사람인데 왜 행복으로 끝나느냐. 어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가식적인 인간이라고.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강의할 때만 가면을 쓴다. 원숭이 가면.
사람은 오래 지속된 사건이나 체험을 짧게 끝난 것보다 중요하게 다룬다고 한다. 지나간 일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당연히 길었던 사건이 더 많이 저장될 것이다. 만약에 그 사건이 불쾌한 일이었다면, 불쾌한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게 된다. 가뜩이나 길어서 많이 저장된 기억은 불려나올 때마다 불쾌감을 달고 나온다. 반복. 달고 나오는 감정이 불쾌감보다 더 심각한 것일 때, 이를테면,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일 때 트라우마가 된다. 나도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십 년 넘게 정신 건강에 필요한 약을 먹었다. 약은 당장의 일상에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극복해 볼 방법은 기억을 수정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전문가는 아니다. 학위나 직업이 필요한 게 전문가라면 말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경험과 깨달음을 품앗이 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게 삶 아닌가.
내게 상처를 주고 내 삶을 무너뜨린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한다. 아니, 우연에서 시작해야겠다. 클럽에서 내게 첫눈에 반한 남자는 당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여자인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구애했다. 마침 남자친구가 없었던 시기였으나 도도하게 그를 무시하며 인연을 재웠다. 클럽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연이 운명이 될 거라 예감한 것도 삽시간. 그는 내 모든 것을 사랑했고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해보자. 까짓, 타다가 재 되면 같이 묻어주소!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불을 질렀다.
그랬던 남자가 왜 나를 파멸시킬 뻔 했느냐. 사람은 변하니까. 환경의 영향, 타인의 간섭, 심리적 결핍, 단 하루도 똑같지 않으니까. 남자의 폭력성은 물건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급기야 나를 던졌고 결국 죽이려고 했다. 나는 농약을 마셨고 그가 신고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나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을 등졌다. 몇 년 동안은 그가 날 때리고 죽이려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자학했으며 자해했다. 난 죽어야 하는 애야.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예뻤던 시절을 지옥에서 보내야 했다.
내가 조금씩 변하게 된 건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다. 막상 기억을 글로 내놓고 보니까 나쁜 것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좋은 추억이 훨씬 많았다. 당연한 것이, 그를 만나 사랑했던 7년 중에 증오는 거의 끄트머리에 잠깐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과정이 훨씬 길었는데도 마지막 사건이 너무 충격이었기에 그를 증오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심리학적인 문장을 다시 끌고 오면, 사람은 지속된 사건이나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좋았던 추억을 쓰기 시작한다. 아주 길다. 끝이 없다. 그 글을 쓰면서 그날의 기분을 느껴본다. 웃는다. 와, 이럴 수가. 그 작업이 끝난 후 증오가 느닷없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감정의 중립 단계까지는 온 것 같았다.
용서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생 한 시절을 다 던져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의 나를, 내가 선택했던 사랑을 온전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가 내게 큰 잘못을 한 건 맞지만, 내 인생에 너무 큰 타격을 줬지만, 그건 따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와 나를 죽이려고 했던 남자. 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기억 때문에 혼란스러울 필요는 없다. 흔히 그렇지 않던가? 엄마를 떠올려도 좋아하는 기억과 싫어하는 기억이 공존하니까.
그와 사랑할 때는 참 좋았어, 라고 말하면 경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게 참 잘했지, 다정했어, 라고 말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나는 그때의 내가 좋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 기분, 이라고 말하면 그만하라는 표정. 넌 이상주의자 혹은 기억상실자. 세월이 약이 맞구나. 빈정대는 사람들.
그런데 말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자신만이 내릴 수 있습니다.
나는 그와의 좋은 기억을 많이 끄집어내어 나쁜 기억을 누르는 처방을 택했다. 세월이 약은 아니지만, 작정하면 그 끔찍했던 기억을 일 초 간격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 옳은 선택은 아니다. 긴 것과 강력한 것. 두 가지 중에 강력한 것이 이길 때 트라우마가 되고 긴 것이 이길 때 극복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오래 걸렸다. 그 남자와의 인연부터 이별, 그리고 그가 준 고통을 극복하기까지 14년 걸렸으니 아마 전생에 모진 인연이었나 보다.
내가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같은 고통을 다시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행여나 그와 다시 재결합하거나 혹시나 폭력적인 남자를 만나거나. 그것만 하지 않으면, 그래서 눌렀던 기억과 감정이 폭발하지만 않으면 이대로 살아도 좋을만큼 괜찮은 마음이 되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 아직 살아갈 날이 있다는 사실이 벅차서 마음을 리모델링했다.
큰 상처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만한 처방을 내린다. 의학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인간 관계나 사회 생활을 최소화 시키기도 한다. 살기 위해 하는 결정이다. 당신이 살려줄 거 아니면 제발 간섭하지 말자. 조언이라고 포장하지도 말자. 그저 살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하는 것마저 박수 쳐 줄 사람이 필요할 뿐. 아니, 박수도 치지 말자. 스스로 처방할 수 있는 사람은, 산다. 사는 걸 그냥 눈으로만 봐줬으면 좋겠다.
타인의 처방을 이해하려고 들면 문제가 생긴다. 누구도 모든 삶에 공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디 억지로 공감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살아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나는 살았고, 앞으로 잘 살고 싶어졌다. 살아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다.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 소중한 본능은 없다. 어떤 처방을 안고 살든 무슨 상관이랴. 모든 인생에 명의는 자신일 뿐이다.
(혹시,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처방하는 방법을 몰라서 당신에게 손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얘기는 다음에 써 보겠다)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