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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Dec 11. 2023

멈춤이라는 큰 도전

멈출 때를 아는 사람도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도 용감하다.

  몇 년 전에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녀석을 만났다. 수영을 좋아하고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에 대해 고마워하는 그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결국 그만두었다. 본인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으면서도 옆에서 지켜보는 나 역시 뭔가 아쉬웠다. 수영을 가르쳐본 것도 아니고, 녀석이 대회에 나간 것을 본 적도 없지만 여전히 수영을 좋아하면서 IOC 위원으로 꿈을 바꾸는 모습이 짠했다. 내가 뭔가를 더 알았다면 아니면 엄마 입장이었다면 그만두는 것을 열렬히 말렸을까.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다가 그만두는 것에 대해 근성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좀 더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큰 딸이 작년에 챙겨보았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펜싱을 시작하고 그것만 하던 아이가 더 이상 펜싱이 재미없다고 그만둔다고 한다. 코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훈련을 빠지고 정규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한다. 그 모습을 본 주인공과 다른 친구들은 그 아이의 포기 선언을 지지한다.

 "예지한테 포기도 도전이에요. 운동부는 남들보다 빨리 갈 길 찾아서 평생 그것만 하잖아요. 지금까지 한 게 운동밖에 없어요. 그런 저희한테 포기만큼 큰 도전은 없습니다."

 "포기도 도전이라고? 그거 참 듣기 좋은 말이네. 그러면 근성은 미련함 이가?"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강함을 느끼면서도 코치는 전국 대회 8강에 진출하면 펜싱을 관두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한다. 결국, 그 아이는 8강에 올라갔고 그 즉시 펜싱을 관두겠다고 말했다. 8강에 올라갔음에도 그만둔다는 그 아이의 결심에 또다시 놀랐다. 어쩌면 코치가 그런 조건을 제시한 것도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좋은 결과를 낸다면 포기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 단순히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그만둔다고 하는데 그냥 보낼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코치는 눈물을 머금고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넨다.

  “오늘을 꼭 기억해라.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얻어냈는지 절대 잊지 마라. 힘들 때마다 생각해라. 그 시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내가 알려주고 싶었던 건 그게 다다. 고생했다, 그동안”


  나라면 조건을 제시하고 나서 목표를 달성한 아이를 더욱더 놓아줄 수 없었을 것 같다. 좋은 결과를 낸 그 아이를 끝까지 뜯어말렸을 것이다. 아직 어려서 인생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니냐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면서 수없이 많은 말로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꺼내 들고 좋은 말로 구슬리다가 세상 어려운 줄 모른다고 윽박도 질렀을 것이다. 내가 알고, 보는 세상이 마치 다인 것처럼. 멈춤을 또 하나의 도전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누군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멈출 때, 그것은 결코 포기가 아니다. 지금보다 몇 배 더 힘들여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볼 때는 안타까울 수 있지만 본인만큼은 아닐 것이다.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며, 아까운 마음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 결정이, 그 도전이 쉽지 않음을 안다면 수긍하고 지지해야 주어야 한다. 물론, 이 드라마 속 코치처럼 새로운 기회를 얻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도와주면서 말이다.


  멈출 때를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역량을 정확하게 알기에 그만둘 수 있는 것이며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운동을 하던 제자들 중에 아직 정확한 목표 없이 자신이 했던 운동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본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자신이 걷던 길에서 멈추고 돌릴 용기가 없어서 주변을 맴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기에 투자했는지 알기에 그들에게 쉬이 멈추라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보라고 할 수 없다. 승진 혹은 승리의 가도를 달리는 사람에게도 멈춤을 권하기 어렵지만 주변을 맴도는 사람에게는 더욱 말조차 꺼낼 수 없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들게 될까 봐.


  그런데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멈추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다르다고. 자신의 끊임없이 돌아보고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만이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음을 말해주어야겠다.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는 동안 도리어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갈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멈출 때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멈춘다고 했을 때, 그 멈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두려움이 없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고, 치열한 고민이 묻어나는 멈춤을 포기로 인지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으로 지지해 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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