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방어가 아이를 망친다.
급식을 다 먹고 나오는데 옆 반 아이가 급하게 쫓아왔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얼마 전, 체험학습을 위해 그 반과 함께 버스를 같이 탔다. 버스에서 한입거리 간식 외에 다른 것을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앉았는데 순간 오징어 냄새가 진동하였다. 일어나서 찾아보니 그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오징어를 꺼내 씹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모든 버스에서는 먹는 것을 금하고 있음을 설명했음에도 오징어를 먹는 것이 기가 막혔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했는데 그 혼남이 억울했단다.
"선생님, 제가 혼난 부분에서 억울한 것이 있어요."
"억울해? 선생님이 간식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었어, 안 먹었어?"
"먹긴 했죠. 그런데 이유가 있었어요."
"그럼 억울하지 않아야 할 거 같아. 나는 들을 이야기가 없고."
"아니.. 근데요.. 그게 아니라..."
"음... 선생님은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네."
조금은 차갑게 아이의 말을 자르고 돌아섰다. 억울한 부분이 궁금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물론 아이는 끝까지 나를 따라오면서 자기가 먹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변명을 들어주다 보면 결국 혼낸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야 이야기가 끝난다, 보통은. 친절하지 않은 말투에 대해, 이유가 있었는데 무작정 잔소리를 시작했던 것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더 들어주지 않았다. 잘못을 잘못으로 단순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변명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 아이들에게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딸이 웃으면서 보여준 스레드의 글이 떠올랐다.
이 글을 보면서 진짜 죄송한 마음은 있는 것인가 의심스러웠다. 뭐가 억울한 것일까. 죄송하다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서? 바로 승인을 하지 않고 잔소리를 해서? 그럼 교사는 여기서 끝까지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다독이면서 괜찮다고 했어야 하는 것일까. 우는 딸을 보고 화가 났다는 이 글을 보면서 정말이지 "내로남불"의 정도가 지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진상학부모를 욕하면서 본인이 진상학부모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면 이유가 분명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진상이란다. 진상의 기준을 결국 내 일인가 아닌가로 잡는 모양이다.
요즘 부모 중에는 자기 아이 일이냐 아니냐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은 물론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면 바로 변명해 준다. 내 아이의 잘못에는 분명히 상황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는 부모도 있고, 절대로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방어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순수해서 그런 거짓말을 못해요.", "만약 우리 아이가 그랬다면 분명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아이는 여려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상처를 받아요." 등등 아이를 감싸는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이것을 넘어서서 서슴지 않고 변명도 대신해준다. "우리 아이가 그런 것은 맞는데 선생님이 무서워서 둘러댄 거래요.", "선생님이 무서워서 할 수 없이 잘못을 인정했대요."
내 아이는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굳은 믿음이 방어기제를 곤고히 하는 것일까. 아이는 응당 그 뒤에 숨는다. 그런 부모의 방어기제를 충분히 활용한다. 그래서 잘못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자기 상황만 강조하면서 이해받고 공감받길 원한다. 아이도 잘잘못의 기준을 '자기 안위'로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성하지 않는다. 본인에게는 사정이 있었으므로. 그런 부모에게 강수를 두면서 질문하고 싶다, 아이가 '살인'이라는 죄를 지어도 아니라 해줄 수 있는지, 또는 이해해 줄 수 있는지.
지나친 방어기제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아이는 작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점차 더 그 크기를 부풀린다. 그리고 사춘기에 파악! 부모를 대상으로 터트린다. 부메랑이 되어 결국 부모에게 돌아가는 것은 물론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이기적으로 살게 될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내로남불,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 자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