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소는 억울하다. 진짜 중요한 건 ‘마모도’!
“선생님, 치약은 어떤 게 좋아요?”
며칠 전, 30대 여성 환자가 진료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와 함께 온 환자였다.
아이 칫솔을 챙기며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잇몸이 시리고, 이가 좀 패인 것 같아요.”
살짝 살펴보니,
작은 어금니 쪽 잇몸이 내려앉고, 치아 표면이 파여 있었다.
치경부 마모증
소위 치아패임이라고도 한다. 요즘 너무나 많은 분들이 치아가 이렇게 패여 있다.
“그럼 치약은 뭘 써야 해요?”
그가 묻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선은 치약을 조금만 써보세요.”
“조금만이요? 치약을 듬뿍 짜야 깨끗하지 않나요?”
“아니요. 오히려 마모제가 많으면 치아가 더 닳아요.”
환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그럼... 우리 아이 치약을 같이 써도 되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에요.
어린이 치약은 대부분 마모제가 적고, 부드럽게 닦이니까요.”
(사실 나도 예전에 아이들 것을 자주 썼다)
치약의 절반은 ‘연마 입자’다
치약의 절반은 사실 연마 입자, 즉 ‘마모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처럼 닦는 게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갈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마모제가 많을수록 하얗게 닦이는 대신,
치아 표면이 점점 닳아버리는 것이다.
시린니가 있거나, 치아가 민감한 사람,
교정 중이거나 치아 패임이 심한 사람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마모도가 높은 치약으로 세게 닦으면
치아가 더 갈리고 잇몸이 내려앉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낮 동안엔 물로만 칫솔질(소위 '물치질') 하거나
마모도가 가장 낮은 치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밤에는 자기 전 한 번만,
일반 치약을 쌀알만큼 짜서 부드럽게 닦아주면 충분하다.
결국 치약은 ‘얼마나 많이 짜느냐’보다
‘어떤 부위에 얼마나 부드럽게 닿느냐’가 더 중요하다.
불소는 억울하다
많은 사람들이 불소를 ‘독’으로 오해하지만,
불소는 오히려 치아의 보호막, 방패다.
적정량의 불소는 치아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산에도 쉽게 녹지 않는 구조로 강화한다.
이 과정을 ‘재광화’라고 부른다.
물론 불소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양과 타이밍이다.
치약은 쌀알 크기면 충분하다.
조금 더 쓰고 싶다면 완두콩 크기까지는 괜찮다.
양치 후엔 입안을 부드럽게 헹구고,
혀까지 깨끗이 닦아 마무리하자.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결론은 단순하다.
치약은 ‘많이’보다 '제대로'.
하얗게 닦이는 것보다
‘덜 닳는’ 게 훨씬 중요하다.
<허교수의 핵심 노트> 마모도가 낮은 치약, 이렇게 고르세요
시린이 전용 치약 또는 어린이 치약은 대부분 마모제가 적다(낮은 마모도).
‘폼(거품) 치약’은 입자가 매우 미세하거나 거의 없어서 마모 위험이 가장 낮다.
“화이트닝”, “미백” 문구가 강조된 제품은 마모제가 많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마모도가 공개된 경우(유럽), RDA 70 이하면 낮은 마모도로 분류된다.
다음 화 예고
하루 한 번만 닦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그 ‘제대로 닦는다는 것’,
도대체 뭐예요?”
다음 화에서는 그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실제로, 하지만 과학적으로.
내 칫솔 속에 숨은 ‘진짜 과학’을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