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보다 '느낌'
덴마크에 온지 벌써 두달반이 지나간다. 서러웠던 감정들이 사그러들고 나니 이상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겨우 두달 주제에)
낯선 환경속에 나를 힘껏 내 던진 학교 첫날, 교수님의 말을 반만 알아듣고 집에 와서 자책을 했더랬다. 이런 리스닝과 리딩 실력으로 대학원 과정을 어떻게 따라가나. 그 충격이 어찌나 크던지, 잘 깎아 보려했던 과일을 깎다 날카로운 과도칼에 손을 베인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이다. 손을 너무 많이 베여서 피가 나도 더이상 아픔을 못 느끼는건지, 아니면 손을 베이지 않게 요리조리 머리굴려 대충 깎고 있는건지, 내 상태를 도통 모르겠다. 확실한것은, 내 칼질이 여전히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깎는것을 포기한것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다.
지난주, 첫번째 과제물을 제출하고 교수의 피드백을 손꼽아 기다렸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이론적으로 쥐뿔 아는건 없지만,
그래도 천우연, 15년동안 기획문서 경쟁에서 꽤 높은 수주율로 선망받는 기획자 아니었나. 그리고 3쇄를 찍은 천작가 아니였나. 쓰는 내내 낭떠러지로 추락하던 내 자존감을 억지 억지로 만들어낸 두개의 페르소나가 죽을 힘을 다해 힘껏 끌어 올려준 덕분, 나름 만족스럽게 첫 과제물을 제출했다.
(이번 과제는 문화유산 연구를 할때 나의 주제, 나의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떤 정보(sources)와 작업방식(methods)이 적절한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두달동안 그 방식으로 직접 연구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런거 기획서 쓸때 1차 자료조사할때 쓰던 방식 아니요 거참. 하하하. 그런데 쓰는 내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나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매개자"로서 지역의 예술가, 지역대학 예술학생들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공예섬으로 공식 인정된 덴마크의 보룬홀룸 섬을 중심으로 공예섬이 되기까지의 지역공예협회와 예술대학의 역사와 활동과정을 파악하고 공예협회회원들과 지역예술학부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와 구술 인터뷰를 진행 했다.
초등학생 숙제 내고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 주듯, 시대가 어느 시댄데, 우리 교수, 피드백을 이렇게 글로 써 주시나.
손등에 잘했어요 도장을 받던 어린시절 마냥, 교수의 난해한 필체의 피드백 종이를 받고 잠시 웃었다. 원래 점수를 후하게 주시는 교수님이시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칭찬 도장은 천우연을 춤추게 한다.
이날 저녁에는 오래전에 예약해 둔 "호기심 재즈" 콘서트에 갔다. 주제를 보고 어느정도 난해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끝까지 이해할 수 없던 음악들이 연주되는데 거참,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논리와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선율속에서 우리는 분명 같은 소리를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고 있을게다. 도통 어울리지 못할것 같은 세계 속에서, 소통에 어려움에도, 어찌어찌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해석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다.
음악이 내게 '그러니 괜찮다', 커다랗고 친절한 말덩이를 던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가는 생존 본능같은것이 작용하는건지,
세상을 음악으로 보고 '해석'보다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나는 그 맛 좋은 사과를 쥐고 있던 과도 칼을 내려 놓고 뻣뻣한 껍질 그대로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는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다음달 초가 되면 또 두번째 과제물을 제출해야 한다. 그 사이 한번의 또 다른 과목의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은 오랄테스트까지 있다. 어깨가 한껏 움츠려 들지만 호기심 가득했던 그 재즈 콘서트의 음율처럼, 에라 모르겠다. 마음껏 질러보자.
이곳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이다.
#인생은해석보다느낌으로사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