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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연 입니다 Nov 07. 2022

“Oh! my teacher!”

특별한 예술가, 나의 오드리

10년간의 직장생활, 지친마음과 말라버린 감수성을 회복한다며 퇴사를 결정하고 나는 몇 달 되지 않아 일 년이 훌쩍 넘는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지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 작은 예술마을을 방문해 지역의 예술가들을 만나보는 일이었다. 스코틀랜드, 덴마크, 미국, 멕시코 네 나라를 방문했고 수 없이 많은 예술가와 단체들을 만났다. 그 중 스코틀랜드에서 만났던 오드리(Audrey)는 내게 무척이나 특별했던 사람이다. 그녀를 떠올리면 아직도 입가에서 미소가 번진다.         

첫 번째 여행지였던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딘버러에서 남서쪽으로 120KM정도 떨어진 아주 작은 예술마을, ‘모니아이브(Moniavie)’에서 살 때의 일이다. 나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화가이고 작가였던 노부부 예술가 집에서 3개월을 머물렀다. 나의 특별한 친구 오드리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오드리는 노부부의 수양딸인 조이(Joey)의 친언니였는데 여름마다 조이는 모니아이브에 자신의 가족들과 오드리를 데리고 휴가를 보내러 왔다. 


50대를 훌쩍 넘겨버린 나이와 거대한 몸집을 가졌던 오드리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처음 만나던 그날 내 품에 와락 하고 안겼다. 당황하긴 했지만 내심 아닌 척 웃으며 넘겼다. 오드리의 행동에 당황한 나를 보고 할머니는 오드리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쉬쉬하며 이야기할 법 한 상황에 오드리는 “하하”하고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내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공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 하하하하하하하하”      

오드리는 장애가 자신이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함을 주긴 하지만 그것이 창피한 것은 아니라며 큰 목소리로 야무지게 이야기 했다. 그렇게 진한 만남을 한 뒤 우리는 한참 뒤에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에딘버러에서 2주일간 머물러야할 일이 생겼는데 오드리가 선뜻 자신의 집에서 머물라며 방을 내어 준 것이다. 그 집에 도착한 첫날 밤 시내까지 가려면 버스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며 오드리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내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오드리가 이야기했다.      

"자, 버스를 타려면 이 길을 따라 가다가 약국에서 이렇게 돌아. 여기 바닥이 조금 깨진 거 보이지? 이걸 꼭 기억해. 그리고 계속 가다가 노란 간판 가게에서 돌면 돼. 노란 간판! 잊지마! 길을 건널 때에는 반드시 차가 오는지 오른쪽 왼쪽을 본 뒤에 건너”      

오드리는 이 길을 걸으며 수없이 되뇌었던 본인이 외운 방식 그대로를 단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내친김에 근처의 동네 버스 정류장을 하나씩 돌며 동네 소개를 하겠단다. 버스 정류장 간판을 띄엄띄엄 읽어보려 애쓰지만 잘 읽혀지지 않아 난감해 하는 그녀를 보고 내가 말했다      

“오드리는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난 이곳의 길을 하나도 모르니까, 어쨌든 이곳에서는 나보다 오드리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오드리를 ‘오!마이티쳐 (오! 나의 선생님!)라 부를 거야”      

 씩씩하게 내 손을 잡고 가던 그녀는 내가 ‘오마이티쳐’라고 부를 때마다 어깨를 으쓱으쓱 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길거리 상점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면 선율에 맞추어 가던길을 멈추고 온몸으로 춤을 췄다. 자신이 발레리나라며 동작을 따라 하기도 하고, 드럼 치는 밴드가 되겠다고 하면서 비트를 넣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술이 어떠냐고 큰 목소리로 질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며 불안했지만 어느 순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오드리의 모습에 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했다.      

다시 모니아이브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날 저녁, 오드리는 하얀 비닐봉지로 엉성하게 포장한 두 개의 선물과 또박또박 적은 주소 하나를 내밀었다. 초콜릿과 액자, 그리고 어렵게 적은 자기집 주소. 초콜릿은 여행하면서 먹고, 액자는 내가 사진 찍기를 좋아하니까, 주소는 언제든 여행중에 자기에게 편지 써서 부치라고. 세 개의 선물 앞에서 큰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마지막날, 오드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내가 특히 좋아했던 발레리나 율동을 열심히 선보여 주었다. 오드리의 동작, 눈, 마음에는 그 어떤 예술가보다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특별함이 있다. 맑은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당차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향해 자신감이 있게 살아가는 멋진 예술가, 그게 바로 내 친구, 보고싶은 오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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