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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킴 Dec 28. 2022

타고난 팔자를 믿으시나요?

홍대입구역 사주

이번에 방문할 2호선 여행지는 홍대입구역이다. 방문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혼잡이 예상됐다.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나 연인들이 넘쳐났다. 혼자여서 좀 더 춥게 느껴졌다. 사람들 표정이 밝았다. 덕분에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홍대입구는 전에 와본 적 있다. 혼자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는 공연을 보려고 했다. 좀 더 빨리 알아봤어야 했다. 모두 매진이었다. 생각 끝에 사주를 보기로 결정했다. 크리스마스에 남자 혼자 홍대입구역에서 사주를 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엔 어떤 새로움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에 카페에서 재미로 사주를 본 적 있다. 정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나무'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가게 앞에 섰다. 긴장됐다. 들어가기 전 외관부터 살폈다. 유명한 곳인가 보다. 방송출연 기록들이 많이도 붙어있었다. 괜한 기대감이 생겼다.



들어갔다. 여자분이 앉아있었다. 간단한 인사 후 앞에 앉았다. 태어난 날과 시간을 물어 답했다. '평생 사주'를 선택했다. 과학은 사주에도 혜택을 주었다. 종이가 아닌 패드를 사용했다. 패드 화면엔 나의 사주가 알록달록 색깔과 한자로 적혀있었다. 사주와 패드는 썩 어울리진 않았다.


나는 '물'이 많은 사주라고 한다. 그동안 '나무'로 알고 살아왔다.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 어울리는 직업, 돈이 들어오는 나이대와 배우자 등에 대해서 들었다. 여자분은 내가 사주를 처음 봤지만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사주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사주나 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깊이 성찰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인생이 이미 정해진 대로 움직일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다. 팔자대로만 인생이 흘러간다면 너무 재미없을 거란 결론이다. 


이번 2호선 여행도 성공적이었다. 정해진 운명을 믿지 않는 나를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소위 전문가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말이다. 예전의 나라면 언급된 모든 얘기를 신경 썼을 거다. 이번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고요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호수처럼.


나이를 허투루 먹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기특했다.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기분 좋은 합의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들어간 지 30분 정도 지났다.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 날씨도 더 추워졌다. 바로 앞에 다정한 커플이 지나갔다. 더 외로워졌다.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였다. 그렇다면 '세미 화이트 크리스마스' 정도 되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입 밖으로 꺼내선 안될 개그였다. 문득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방금 사주를 보고 나온 영향도 있었다.


배꼽 빠질 정도로 즐거웠던 순간. 많이 울어서 세상이 일렁였던 순간. 설렘에 밤잠 설쳤던 순간. 세상이 무너졌던 순간. 그 많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유리에 비친 내가 보였다. 방금 떠올린 기억들이 사람모양으로 서있었다.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내성이 생겼을 수도...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끝나간다. 


아직 시간보다 빠른 걸 본 적이 없다.


시간 참 빠르다.



https://blog.naver.com/dhfigo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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