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힐링 신촌역
계묘년이다. 새해가 밝았다. 어김없다. 주말에 2호선 여행을 해왔다. 일정상 이번엔 평일에 진행했다. 평일 저녁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굳은 결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평소라면 분명히 하지 않을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향할 곳은 '신촌역'이다. 언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잊고 살았다. 신촌역에서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검색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도 봤다. 뻔한 내용뿐이었다. 우연히 '심리상담'이 가능한 곳을 발견했다. 6번 출구 근처였다.
온라인으로 예매가 불가능했다. 퇴근하고 빠르게 가보기로 했다.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궁금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상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이 하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신촌역에 도착했다. 주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오피스텔이었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000 이죠? 오늘 영업하시나요?" "아... 어쩌죠? 오늘은 예약이 차 있어서 내일부터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간판이 없어서 느낌은 이상했지만 들어가 보려고 했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들어가 봐야 안다. 애초에 이 여행의 의미는 평소 나의 행동패턴을 깨부수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하필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곧 알맞은 곳을 찾았다. "힐링 카페"였다.
카페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카페에 안마의자가 있어 마사지가 가능했다. 절대로 가지 않을 곳이었다. 이런 곳에 돈을 쓰느니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한번 더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성맞춤이었다. 좋은 선택지였다.
일단 배를 채워야 했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1일 1식을 하고 있다. 지금 먹는 햄버거가 오늘 첫끼다. 배가 찰리 없다.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더 먹었다. 그제야 미소가 생겼다. 코트 앞 섬을 여미고 카페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갔다. 카운터엔 여주인이 서있었다. 다른 곳엔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보였다. "처음이신가요?" "네." "30분, 한 시간 코스가 있습니다. 마사지 후에 음료주문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30분으로 할게요. 음료주문은 안 하겠습니다."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사지만 받고 집으로 갈 생각뿐이었다. 주인을 따라갔다. 무거운 커튼이 열렸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다. 여러 개의 칸막이기 보였다. 칸막이마다 안마의자가 2개씩 배치되어 있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말소리가 들렸다.
주인은 신발을 벗고 덧신을 신으라고 주문했다. 안마의자 경험이 없었다. 기대됐다. 종류를 고르라고 했다. '활력'코스를 골랐다. "발 제대로 넣으시고요. 끝나면 덧신은 입구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 혼자 안마의자에 남겨졌다.
'활력'코스가 시작됐다. 허리와 엉덩이가 이어진 곳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녀석은 능숙하게 등 하부에서 목까지 차례로 훑었다. 입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으..." "아..." "오...." 어릴 때 경멸하던 수염 난 아저씨 소리를 내고 있었다.
피가 돌기 시작했다. 몸이 따뜻해졌다. 가끔 들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사지는 때론 강하고 부드럽게 종종 예측을 벗어나며 진행됐다. 어느 순간 일시불이 좋을까 렌털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왜 힐링카페인지 알아버렸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깊은 생각 좀 해보려고 했다. 무리였다. 눈은 빠르게 감겼다. 30분은 생각보다 짧았다. 아쉬움을 남긴 첫 안마의자 체험기가 끝이 났다. 들어올 때 들렸던 곳에선 여전히 안마의자 소리와 사람소리가 들렸다. "으... 아... 오..." 아저씨였다.
저 사람은 한 시간 코스였다. 뭔가 진 거 같았다. 신발을 신고 겉옷을 입었다. 짧은 시간 숙면을 취한 건지 개운했다. 차가웠던 손발은 어느새 따뜻했다.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여주인은 한 번 더 음료를 마실건지 물었다. 괜찮다고 답했다.
"수고하세요." 독수리가 물고기를 낚아채듯 애초에 목적이 안마의자인 듯 급하게 나가는 모양새였다. 들어올 때 보였던 커플은 안보였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추웠다. 30분 만에 피로가 풀렸다. 신기했다. 재방문 의사 가 생겼다.
지하철을 탔다. 밀리의 서재로 간다 마사노리의 <비상식적 성공 법칙>을 읽었다. 이 책은 오늘 오후에 우연히 알게 됐다. 읽으면서 놀랐다. 저자의 생각이 나와 너무 똑같았다. 내가 연습장에 끄적인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독을 한다. 자기 계발서는 더 빨리 읽는다. 내용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달랐다. 자기 경험은 10%도 안 됐다. 나머진 재탕 삼탕이었다. 이 책은 달랐다.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읽었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곧장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오늘 겪은 일을 적기 위함이다. 집으로 가면 끝이다. 침대에 눕는 순간 내일이 되는 매직을 나는 안다. 지금 매우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오늘 신촌여행은 심리상담이 안마의자로 바뀌었다. 둘은 사실 다르지 않다. 교집합엔 '힐링'이 있다. 근래에 누군가에게 2호선 여행의 취지를 말한 적이 있다.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걸 왜 해?' 기뻤다. 뻔하지 않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