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세포의 최후

지병일지

by 이녹록

나는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앓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가지고 있다기엔

무슨 멋진 패션 아이템을 지닌 것 마냥 해맑게 느껴져서 그건 아닌 것 같고,

앓고 있다는 표현을 하기엔

정말 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기에 이 표현도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이야기하듯 식상하게 진단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처음 제대로 병원 검사를 마치고 받은 진단은 1.5형 당뇨였다.

보통은 1형 2형으로 나뉘는데 1.5형은 뭐란 말인가..

두 가지 모두에 속하지 않던지, 두 가지 모두에 속하던지.


지나간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나는 모르고 살아왔지만 생각보다 발병은 일찍이 시작된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무심한 내가 그런 상황들을 무디게

또는 우습게

별거 아닌 듯 넘겨왔던 게다.

이제와 자책하면 뭐 하나.

하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항상 과거의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과거로 돌아가서 갖가지 만약의 경우의 수를 지어내며 나를 괴롭힌다.


억울함이 남아 있었다.

학창 시절 운동이라면 남들보다 많이, 땀도 꽤 흘린 편에 속한다.

대학시절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내 청춘을 흘려보내지도 않았는데

왜 내 삶은 주변친구들처럼 건강한 몸뚱아리 하나도 가지고 있질 못한 건지.

나는 전생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건지.


한 번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행복은 못 누리는 걸까

항상 생각해 왔다.

답은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평범하지 않은 날들을 거쳐

어느 정도 내 병에도 적응될 즈음 합병증을 맞이했다.


난 다시 새로운 자책에 들어갔다.

내가 좀 더 일찍 내 병을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좀 더 일찍 치료를 받았더라면


좀처럼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하는 성격은 아닌데,.

이 병만큼은 나를 끈질기게 과거로 돌려놓는다.


눈에 레이저를 맞았다.

레이저 치료도 다른 안과질환 치료에 쓰이는 것 같으나

당뇨합병증 치료에 쏘는 레이저는 좀 더 특별히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른쪽눈 치료를 받을 땐 몰랐던 사실이다.

다들 이 정도로. 아픈 줄 알았고, 다들 나와 비슷한 처지인 줄 알았다.

치료받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었기에,

젊은 이중에 합병증은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치료를 기다리며 나란히 놓인 레이저 기계 앞에 앉았다.

내 옆에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고,

의사 선생님은 내 치료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할머니부터 먼저 치료하겠다고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 환자분 아픈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계세요"

나는 틱틱 울리는 레이저소리를 속으로 세었다.

20-30번 정도 쏘이고 치료는 끝났다.

할머니를 끝까지 타일러 보내고 의사는 내 앞에 앉았다.

"환자분 아픈 거 아시죠?"

나는 할머니가 치료받는 동안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아 이번에는 별로 아픈 게 아닌가 보다.

당연히 할머니와 나는 같은 처지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의사의 말에 나는 조금 실망했다.

아 나는 다른 치료구나.

레이저가 틱틱거리기 시작했다.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30이 넘어갔다.

어 어..

곧 100이 넘어가고서야 레이저는 끝이 났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자동으로 눈물이 흐른다.

레이저가 끝나자마자 간호사는 곧장 몇 가지 약을 넣어주고 치료는 끝났다.

만신창이가 된 채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더듬거리며 접수대 근처로 가 잠깐 몸을 진정시켰다.

그나마 멀쩡한 한쪽눈으로 카드를 더듬어 찾아 계산을 하고선 선글라스를 끼고 병원을 나선다.

이런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가기가 쉽지 않다.

멀미가 심해 택시는 꺼리지만, 지금은 택시가 최고다.

잠깐 잠이라도 청해야 고통을 잊을 수 있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지만 아주 기분 나쁜 통증이 하루 종일 지속된다.

머리통 맨 가운데를 무언가 뚫고 들어가서 타오르는 느낌이랄까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통증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레이저 치료 후에도 병의 진행이 계속되어 눈에 출혈이 시작되면

다음 치료로 넘어간다.

주사치료를 받는 것이다.


단순히 주사치료라 하면,.

나는 엉덩이 주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안 좋은 곳은 눈이다.

그러니

눈에 주사를 맞는 것이다.

안구에 주사를 맞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수술복처럼 차려입고 머리엔 샤워캡같이 생긴 수술모자를 쓰고 들어간다.

평평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위에 눈꺼풀을 소독한다

그다음 눈을 뜨면 의사 선생님이 보이고 눈이 시리도록 밝은 형광등이. 보인다.

마취약인지 무언지를 눈동자 위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마구 떨군다.

그 맑은 액체들로 시야는 유리창에 물이 고이듯 눈동자 위에 고여 보이는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희미하게 번질 때쯤

그 순간의 어느 즈음에 의사는 주사를 놓는다

시선을 위로하라고 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서 희미하다.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술은 금방 끝난다.

눈에 거즈를 붙이고 수술실을 더듬거리며 나온다.

수술복과 모자를 벗고,

접수대 앞 의자에 앉아 여느 때처럼 잠깐 몸의 안정을 취한다.

진료비를 계산하고,

준비해 둔 선글라스를 끼고 병원을 나선다.

오늘도 역시 택시가 절실한 날이다.


이런 치료에도 불구하고 몇 달 뒤 결국 망막수술을 하게 되었다.

주사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의 진행을 막을 수가 없어서 하게 되는 마지막 단계이다.

실명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입원은 2박 3일 정도면 되었지만 부분마취로 해야 되는 수술이라 긴장이 되었다.

수술 전 간호사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수술과정을 들으니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안구에 세 군데 구멍을 뚫어 한쪽에선 혈액이 엉긴 유리체를 빼고 불규칙적으로 터지는 혈관들과 출혈로 생긴 막들을 걷어내고

다른 쪽에선 안구가 쪼그라드는 걸 막기 위해 이것저것들을 보충한다는 내용이었다.

눈에 구멍을 뚫는다는 말을 들으니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단히 마음먹는 것과 수술동안에 혈당이 잘 유지되도록 하는 것뿐,

의사 선생님은 마취과정이 제일 아플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긴장상태여서 그런지 아픈지도 몰랐다.

수술 당시에선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이후에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은 수술과정 전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

정형외과적인 수술을 하면 보통은 부분마취를 해도 수면으로 잠을 재워서 과정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수술 중에 고개를 들어 직접 수술장면을 보는 건 아니까.

그런데 눈수술에서 부분마취는 확실히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나는 일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눈을 뜨고 수술을 하니 안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혈관을 걷어내는 과정도 다 지켜본다.

붉은 회오리가 내 눈앞에서 소용돌이친다.

나는 그것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다.

팔다리는 묶여있고, 행여 사레가 들리거나 재채기라도 나올까 봐 온몸이 긴장된 상태로,

1시간 30분 동안 그 과정을 지켜본다.

수술이 끝날즈음 나도 모르게 초점이 그 회오리를 따라갔다.

회오리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면 나도 그 초점을 따라갔다.

의사는 움직이지 말라고 외쳤다.

내 몸은 결박된 상태이고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아마도 내 눈동자가 이리저리 불빛을 따라다니느라 움직였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런데 어떻게 멈춰지는지 모르겠고 더욱 초점을 따라간다

멈추는 방법을 모르겠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간호사도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더욱더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멈추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멈추는 법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레이저치료를 받으며,

수술을 받으며,

주변시야는 좁아졌지만 시력에 문제는 없었지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보이는 것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설렘이라기보다는,

항상 보였던걸 보아도, 다니던 길도 어색하달까,

보는 것에도 확신도 없어졌다.

길을 건널 때 주변을 살피고 건너게 되는데

차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뭔가 확신이 부족해 재차 두리번거리고는 건너게 되었다.


이런 낯섦과 주저함의 이유가 뭘까..

누구에게 털어놓아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 속으로 생각만 했었다.


어느 날 엄마와 걸어가다 또 그 낯섦을 느꼈고,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망막박리로 양쪽눈을 수술했었기 때문인지, 내 말을 이해했다.

자기도 그랬다고. 그건 기억세포가 사라져서일 거라고.


망막에 붙어있는 세포들도 일종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세포들은 레이저를 받으며 태워졌고,

수술을 받으며 제거되었다.

그 세포들이 가지고 있던 기억들이 사라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말에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