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꼬박일기 08화

좋은 어른의 얼굴

꼬박일기_8

by 노해원
img1.daumcdn-1.jpg © 노해원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아랫집 놀러 가도 돼?"라고 묻는다. '우리'는 아침마다 형아들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엄마, 나 집에 가면 바로 아랫집 놀러 간다!"하고 선언한다. 대체로 아이들은 나의 대답과는 무관하게 우다다 달려가 왁자지껄 놀다 온다. 나는 때때로 죄송한 마음이 들어 "밥 먹고 가야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좀 쉬셔야 해" "오늘은 좀 늦었으니 집에서 놀자~" 라며 아이들을 붙잡아 두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놀자고 안 하고 자전거만 타고 올게" "할아버지 자고 있으면 바로 집에 올게" "어제 두고 온 잠바만 가지고 올게"라며 어떻게든 내려갈 핑계를 만들어 낸다.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우리가 지금 사는 초롱산 아래 통나무집에 이사오며 처음 만났다. 우리 집 바로 아래. 그러니까 스무 발자국 정도만 걸어가면 갈 수 있고, 커튼이 없다면 속이 훤히 보일 만한 거리. 식구 많은 우리 집에서 가끔 화장실 급한 사람이 겹쳤을 때 화장실을 잠시 빌려 쓰고,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후다닥 샤워하고 올 수 있는 그런 거리에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줄 몰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가 이사 오기 바로 전 해에 우리 집 바로 아래 집을 지어 살고 계셨고, 알고 보니 남편의 고등학교 후배 부모님 이셨다. 우리 바로 전, 이 집에 살면서 고생 꽤나 했던 언니가(그때는 집 앞 도로가 비포장이었고 주변에 이웃도 없이 외딴섬 같은 곳이었다) 이 외진 곳에 가까운 이웃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고, 또 저렇게 인품이 좋으신 분들이 오셔서 더 잘됐다며 좋아해 주었다.


돌아보면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가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우리'는 신생아 아토피, 이음이와 울림는 아직 너무 어렸다. 셋다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시기에 남편은 논문 쓰느라 생활 패턴이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육아와 집안일은 나 혼자 도맡아야 했다. 남편도 나도 하루하루가 너무 벅차서 서로 괜찮냐, 잘 지내보자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들었던 날들이다. 눈앞이 깜깜한 동굴 속에서 지내는 것 같은 날들 속에서 가끔 숨 돌릴 구멍 한 군데씩 만들어 주었던 분들이 아랫집 식구들이다. 그저 아이들을 귀엽게 봐주는 것을 넘어 두 분의 너른 품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주었던 수많은 순간들. 그 품에서 아이들도 나도 참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울림이와 이음이가 처음 아랫집으로 내려오던 순간을 아직도 마음속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계신다. 그때 아이들 표정, 했던 말들, 행동 하나하나까지 떠올리시니까. 나는 가끔 이런 우리의 관계를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 우주가 우리를 응원해 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엄마, 우리는 이웃 운이 진짜 좋아. 그치? 집은 좀 좁고 그래도 이웃 운이 너무 좋아서 다른 데로 갈 수가 없네" 어느 날 이음이가 했던 말이다. 이음이 말처럼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도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노동운동에 청춘을 바친 부모님 주변에는 항상 세상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 속에서 어른들의 고민, 어른들의 언어를 듣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귀여워했고, 그 옆에 있던 아저씨 아줌마 이모 삼촌들도 그런 나를 귀여워했다. 그 속에서 몇 마디 말이라도 섞은 날엔 왠지 내가 훌쩍 큰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는 뭔가 달라'라는 거만한 마음이 들어 속으로 으스대기도 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때 함께 있었던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를 그냥 귀여운 어린애로만 보지 않고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귀 기울여 주던 어른들을.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그 속에서 내가 했던 어떤 말들보다 나를 따뜻한 눈길로 봐주었던 그들의 얼굴이 나를 더 으스대게 해 준다. '나 이렇게 좋은 어른들 사이에서 자랐어.'하고. 꼬박이들의 기억 속에도 그런 좋은 어른들의 얼굴이 많이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아이들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요즘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일기처럼, 때로는 편지처럼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신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함께 한 수많은 시간만큼 할아버지의 글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나와 남편은 그 글들을 보고 수 없이 눈물을 훔쳤다.



+

아랫집 할아버지 일기 중 일부

img1.daumcdn.jpg


‘우리’에게 제사를 어떻게 설명하지요? 어제는 아버지 제삿날이었거든요.

나 : 만약에 할아버지가 죽으면, 지우 삼촌이 해마다 할아버지 죽은 날을 기억하여 밥도 떠놓고 물도 떠놓고 하는 거야.

우리 : 할아버지가 왜 죽어.

나 : 늙었으니까.

우리 : 지우 삼촌이 훨씬 더 늙었어.

나 : 지우 삼촌이?

우리 : 응.

나 : 그래도 지우 삼촌이 먼저 죽으면, 할아버지 마음이 아프잖아.

우리 : 할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아프지.

나 : 그러면 할아버지 안 죽을게.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안심이 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당분간 죽지 않기로 했어요. 팔과 다리에 모기한테 두 방이나 물렸다고 ‘좋겠지.’ 하며 나를 보자마자 자랑하는 ‘우리’를 아프지 않게 하려고요.

(2022.6.16)


하룻밤 새우자고 하던 이음이가 ‘내일 또 일어나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종이를 접어 칸을 나누어 ‘아야 어여 … ‘ 글자를 쓰다가 이따금, 먼저 잠든 울림이 머리맡에 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음이마저 잠들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울림이와 이음이가 우리 집에서 잤어요. 아이들 큰손님을 맞이하려고 아침부터 몸을 깨끗이 씻고 집 안팎을 청소하고, 아내는 저녁과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나는 잠들기 전 읽어줄 동화를 찾아두었어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 아이들과 달리기 내기도 하고 ‘우노’라는 카드놀이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영화도 함께 보았어요. 동화는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개구리’를 들려주었어요. 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넘어져 밑에 깔려서도, 나이도 많고 힘이 센 아이에게 ‘남의 그림을 뺏으니까 나쁜 놈이지.’라고 할 때, 울림이는 나는 저렇게 못할 거라고 했어요. 밤이면 하늘 높이 떠 나를 지켜주던 울림이와 이음이 별이 꽃잎처럼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와 지금 내 곁에 쌔근쌔근 잠들었어요.

(2022.2.26)


‘좋은 장소 찾으러 갑시다.’ 라며, 전화를 받자마자 느닷없이 이음이가 어른 말투로 말했어요. 엊그제 함께 산책을 가자고 했는데, 달려오는 울림이 이음이 손엔 사진기가 들려 있는 걸 보면 멋진 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봐요. 마을회관까지 가기로 했어요. 울림이 이음이는 킥보드를 타고 미끄러지듯, ‘우리’는 엄청 빨리 달려, 나는 뒤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바람이 휘몰아치듯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조용하던 온 마을이 들썩거려요. ‘안녕하세요.’ 라며 이제 어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해요. 마을회관 빈 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는 운동기구가 있는데, 아이들은 제 키와 몸집에 맞게 놀이기구처럼 타고 놀아요. 네 시가 넘어 집을 나왔으니 이제 곧 어두워지려고 해요. 저 너머에서 오셨는지 낯선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회관을 나오시면서 아이들이 참 예쁘다며 딸을 셋이나 두었느냐고 물으셔요. 머리카락도 길고 곱상하니 여자아이처럼 보였나 봐요. 아니라고, 아들 셋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아빠가 된 듯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안아 달라고 해요. 얼마만큼 올라오는데 이음이가, 할아버지가 힘드니 ‘우리’한테 내려서 걸어가라고 하니, ‘우리’는 싫다는 몸짓으로 나를 더 꼭 붙잡아요. 다시 등에 업혀 오면서, 따라오는 강아지들을 ‘단이씨’ ‘보리씨’라고 부르더니, 엄마 이름은 노해원이고, 아빠 이름은 황바람이라며 ‘해원씨’ ‘바람씨’ 라고 혼자 불러 보아요. 저기 달님이 있다며 먹는 시늉을 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는 ‘우리’가 한쪽 베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초생달이 떠 따라오고 있었어요.

(2022.12.9)

keyword
이전 07화이벤트 중독자들의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