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업시간에 제일 싫어하는 설명을 고르라면 단연코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바로 '어조'이다. 물론 모든 어조가 싫다는 것은 아니고, '남성적', '여성적'어조가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김소월을 설명할 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소월 시(여기서 김소월 작가님의 모든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시험에 주로 나오는 작품이다)의 특징은 주로 민요적인 리듬감과 이별의 정한, 그리고 여성적 어조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여성적, 남성적 어조란 무엇일까? 수업할 땐 여성적 어조란 '소극적, 희생적'이고 남성적 어조란 '진취적, 의지적'이라고 말이다.나는 소극적이고 희생적인 사람인가? 많은 시간을 생각해보지 않아도 내 대답은 '아니오'다.
우리나라에만 해도 2020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2,516만 1,000명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말투는 모두 같다는 것일까? 우리 집만 해도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여성이 존재한다. 이들의 말투는 모두 다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섬세한 말투가 있는가 하면, 사실을 분명하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말투도 존재한다. 이 모두를 하나의 성별로 묶을 수 있는 것인가?
하나로 일반화하는 것은 이해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큰 단점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작은 장점을 위해 얼마나 더 납작해져야 하는가?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눌러버리는 일반화는 이제 는 그만해야 할 때이다.
어떤 성별을 납작하게 표현하는 것은 여남 모두에게 좋지 않다. 나는 직설적이고 제법 무뚝뚝한 여성이지, 남성은 아니다. 우리 아빠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꽃을 사랑하지만, 여성은 아니다.우리는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전형적'인 여성, 남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별이 바뀌지는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에 성별이 존재하듯, 말투에도 성별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일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다고 나의 성별이 바뀌지 않듯, 말투에도 성별은 존재해서는 안된다. 나의 말투는 나의 성격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일 뿐, 내 몸속 염색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짧은 머리의 제법 단호한 말투를 가진 사람일 뿐 남성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교과서 속의 성차별, 이렇게 바꿔주세요!'를 보면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었다. 물론 여가부가 교육부는 아니라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진 것은 아니어도, 국가 기관에서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점이 제법 신났다(물론 지금은 달라진 지점이 있어서 슬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