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놓아줌의 미학이 담긴 영화다.
주인공은 자신의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훼방하려고 하지만 그가 이제 자신이 아닌 현재의 약혼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정리한다.
베프 조지의 대사가 주옥같다. 미련을 놓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자 심통이 난 줄리앤에게 ‘정말로 마이클을 사랑해? 아니면 단지 뺏고 싶은 거야?’라고 물으며 줄리앤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눈 딱 감고 고백해. 가장 별로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바보 같은 타이밍이지만 그렇게 됐다고. 그러면 그 친구는 선택할 거야’라고 하며 줄리앤에게 문제에 대한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상황을 원하는대로 통제하려는 행동은 잘못되었으니 두렵더라도 솔직한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고, 관계의 선택권은 자신이 아닌 마이클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클라이멕스에서는 ‘마이클은 키미를 쫓고 있고, 너는 마이클을 쫓고 있어. 널 쫓는 사람은 없네. 상황 파악되지? 마이클은 키미를 선택했어.’라고 하며 관객보다 더 빠르게 상황의 핵심을 간파하는 반면, 마이클의 마음이 바뀔 리는 없으니 이제 단념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줄리앤이 직시하도록 만든다. 미성숙한 줄리앤과 달리 사랑과 이별에 통달한 조지를 통해 인간관계에 필요한 성숙한 태도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주인공이 남자친구가 떠난 결혼식장에서 춤을 추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줄리앤은 슬픈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씁쓸함도 잠시, 자신의 베프 조지가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해 결혼식에 깜짝 방문하고 두 사람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웃는다. ‘여자 주인공의 사랑은 이루어진다’라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은 엔딩이라서 신선하고, 그만큼 현실적이라서 여운이 남는 엔딩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 관계에서 제 3자가 되는 상황이 실제 삶에서는 빈번하기 때문이다. 혼자로 남고 사랑에 실패하였다 해도, 그 상황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 것 또한 엔딩에서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아무려면 어때? 인생은 계속되는데.’라는 조지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영화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타이밍을 놓쳤다 하더라도 낙담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근데 그 타이밍을 놓쳐도 어차피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왓챠피디아의 한줄평이 이 엔딩이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는 이유를 완벽히 설명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괜히 속상할 때마다 처방전처럼 줄리앤과 조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Say a Little Prayer’에 맞춰 춤추는 장면을 볼 것 같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아날로그적 낭만이 담긴 영화다.
여자 주인공인 애니는 얼굴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라디오 방송의 사연자 샘에게 호감을 느낀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확신이 없을 뿐더러 샘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애니는 시애틀에 그를 찾으러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 영화 역시 엔딩이 인상적이다. 남녀 주인공이 커플로 맺어질 때 마무리되는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끝에 가서야 남녀주인공이 정식으로 만난다. 고백이 아닌 알아감의 시작일 뿐이지만 관객들은 이 만남을 위해 수많은 우연과 기적이 필요했다는 것을 안다. 조나가 책가방을 깜빡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놓고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애니가 약혼남과 식사를 하다가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았더라면, 샘이 조나를 찾기 위해 시애틀에서 뉴욕으로 바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둘은 서로 인사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나눈 채 평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은 특유의 유쾌함과 발랄함으로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은’ 희망적인 기분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서로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샘과 애니가 끝내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면 우리도 인생에서 그들처럼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덧붙여, 사소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 깨달았어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이었죠. 아내의 손을 잡았을 때 난 알았어요. 마법 같았어요.’ 극 초반 샘이 라디오 진행자에게 사별한 아내와의 첫만남을 말할 때 나온 대사가 영화의 서사와 엔딩을 암시하는 복선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이 더 짙어질 것이다.
고전미가 느껴지는 영화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냅챗,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두 사람을 처음으로 이어주는 매개체는 라디오다. 애니는 유튜브 쇼츠가 아닌 라디오 생방송으로 잠 못 이루는 시애틀이라는 가명으로 전화 연결된 샘의 이야기를 듣는다. 얼굴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지만 사연자 샘의 이야기에 담긴 진심에 애니의 마음이 움직인다. 애니는 샘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검색해서 디엠을 보낼 수 있는 시대를 사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샘이 과연 자신의 운명의 상대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떠나고, 샘과 정식으로 만나는 약속을 잡기 위해 그의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애니의 편지를 읽고 그녀가 자신이 바라던 새엄마라고 확신한 조나는, 아는 건 오직 그녀의 이름뿐인데도 불구하고 약속 장소로 가서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당신이 애니가 맞냐고 물어본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사랑은 현재는 불가능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비록 개연성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보는 이들이 향수와 낭만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가 지금 감수하기 싫고 감수할 수도 없는 대책없고 비효율적이고 느린 방식의 사랑이 이 영화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