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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04. 2024

Rutgers University

여정의 종지부에서

초심을 되찾다


인공지능 목소리에 다양성을

럿거스 대학교는 우리를 인솔하신 교수님께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신 대학교이다. 대학교 측은 교수님의 방문을 기념하여 연구 발표를 듣는 세미나를 열었다. 우리와 미디어 전공 대학원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수님께서는 연구에 관한 발표를 하셨다.


‘왜 시리 목소리의 디폴트값은 여성일까?’ 시리와 대화하며 즐겁게 노는 조카를 지켜보면서,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품게 된 교수님께서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다. 시리 목소리의 성별과 (남성, 여성, 성중립), 시리 목소리의 방언을 (영어 표준, 인도식 영어 방언) 독립변수로, 사람들이 시리를 신뢰하는 정도를 종속변수로 설정하여, 시리의 성별과 시리가 구사하는 언어에 따라, 시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하셨다. 


“시리의 디폴트 성별을 여성 대신 성중립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맞춤형 시리 목소리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교수님의 제언은 챗봇의 목소리에서 성별, 연령, 국적에 관한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었다. “나에게 편하게 들리는데 별문제 없지.”하며, 기본값으로 설정된 시리의 말하기 속도, 억양, 발음, 톤 등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한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교수님의 발표는 챗봇과의 대화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만큼, 챗봇의 목소리가 차별이나 편견을 심화하거나 특정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챗봇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단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챗봇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 조응하며 ‘co-evaluation’하는지를 총체적으로 밝혀내려고 하는 교수님의 포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청중을 몰입시키는 발표의 정석

여기까지는 연구 내용에 대한 감상이었고, 이제부터는 교수님께서 발표를 얼마나 잘 하셨는지를 얘기하려고 한다. 모두가 “너무 멋지셨다”고 감탄할 만큼 교수님께서는 카리스마와 출중한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하셨다.

 

먼저 교수님께서는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셨다. 교수님께서는 모교에서 발표하는 것이라 아침에 너무 긴장되었다고 너스레를 떠시면서 청중을 웃게 만들었다. 철저히 설계된 말 사이에 숨통처럼 튀어나오는 날 것의 진심에 청중은 반응한다. 농담에는 가식이 없어야 하며, 농담은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그 어려운 원칙을 교수님께서는 이미 완벽하게 통달하신 상태였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색다른 액티비티를 제공하셨다. 발표 중간에 자신의 연구에서 어떤 통계적 방법론을 적용했는지를 묻는 깜짝 퀴즈를 내신 다음, 청중이 답을 고민하고 맞춰보는 시간을 마련하셨다. 간단한 퀴즈를 통해 청중의 집중을 환기하고 동시에 핵심 정보를 강조하는 교수님의 노련미가 돋보였다. 덧붙여 학술적인 발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나의 편견을 깨뜨린 활동이었기 때문에 특히 인상적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발표 내내 대본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셨다. 대본을 보며 읊는 기계적인 말보다는 대본 없이 끄집어내는 엉성한 말이 기억에 잘 남는다. 교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앞서나가, ‘엉성하지도’ 않게 말씀을 전하셨다. 비문이 없었고, 더듬지도 않으셨고, 멈칫하지도 않으셨다. 얼만큼 연습하셨을지 가늠조자 되지 않았고, 청중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교수님을 보며 발표자의 시선이 대본에 갇히지 않은 발표가 지닌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는 질의응답의 귀재셨다. 발표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혹시 질문 있나요’를 시작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발표자가 말하는 도중에도 불쑥 손을 들어 질문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형식적인 인사말도 없이 바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 


‘어떡하지. 당황하지 않으셨을까?’하며 마음을 졸인 것이 무색해질 만큼, 교수님께서는 상대의 페이스에 절대로 휘말리지 않으셨다. 좋은 질문을 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내며, 질문에 대한 답을 막힘없이 하셨다. 특히 상대가 지적했을 때 연구의 미흡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시는 모습과, 두루뭉술한 가정 대신 구체적인 사례와 근거를 들어서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교수님께서는 ‘얼마 안 된’ 루키스의 경험까지 사례로 언급하셨다. 인풋을 즉시 업데이트하는 성실함과, 인풋을 필요한 상황에 맞춰 적재적소로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사전 워크샵 기간 동안 교수님 앞에서 여러번 발표했었는데, 내 발표가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형편없어 보였을지 체감이 되어서 창피함이 몰려왔다. 동시에 발표에 관한 교수님의 피드백이 예리했던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한국에 서는 발표를 준비할 때마다 교수님의 발표 모습을 떠오르며 참고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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