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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06. 2024

New York Summit

Part 2. 편지-Off the Record

아빠, 엄마한테만 사진 보내서 미안해. 

아빠가 서운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래서 오늘은 아빠한테 먼저 연락하려고.


오늘 자유여행 1일차였는데, 일행과 함께 SUMMIT에 올라갔어. 시부야스카이랑 비슷한 뉴욕의 전망대라고 생각하면 돼. 인기 많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줄도 오래 서야 했지만, 솔직히 그게 뭐가 대수야, 뉴욕 도시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보면 다를 걸. 압도적일 거야” 아빠의 말처럼 전망대에서 본 뉴욕의 전경은 환상적이었어.


나 사진 별로 안 찍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오늘 하루는 전망대에서만 500장 넘게 사진을 찍었어. 전부 내 사진은 아니고, 같이 간 일행의 사진을 찍었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찍고, 크라이슬러 빌딩 앞에서 찍고, 바닥의 통유리창에 비치는 뉴욕을 찍고, 은색 공이 두둥실 떠다니는 포토존에서 찍고.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야. 시간대에 따라서 또 열심히 찍었지. 해가 쨍쨍한 뉴욕을 찍고, 노을이 질 때 뉴욕을 찍고, 화려한 뉴욕의 야경을 찍고. 500장이 넘을 수 밖에 없었네. 우리 모두 “여기에 언제 다시 올라오겠어.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 아빠도 여행가서 망설이는 나한테 똑같이 말하잖아. 


우리 모두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뉴욕을 배경 삼아 멋진 포즈를 취했어. “조금 더 웃어봐” “자연스럽게 옆을 쳐다봐.” “여기 한 번 앉아 볼래? “ “이런 구도는 어때?”하며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 


내 사진은 꽤 잘 나와서 만족해. 특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찍은 MZ샷이 제일 마음에 들어. 사진의 비하인드를 조금 얘기해볼게. 일정 내내 우리를 인솔해주신 조교님이 “얘들아, 나 이렇게 사진 찍어보고 싶었는데, 어때?”하며 수줍게 제안해서 탄생한 사진이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저 구도로 찍었는데, 외국인 분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봤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긴 해. 다른 사람과 함께라면 혼자일 때와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걸까? 아빠도 알듯이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부끄러워하는 성격인데, 그 사진을 찍을 때 만큼은 당당하게 예쁘고 멋진 척을 했어. 


SUMMIT은 총 3층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높은 층으로 이동하는 구조였어. 맨 마지막 층에는 루프탑 바가 있더라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녹초가 된 상태여서 앉아서 쉴 공간이 절실했는데, 다행히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어. 한 언니가 뉴욕 디저트 맛집에서 사온 초코 르뱅 쿠키를 허겁지겁 먹으면서 당을 충전했던 것 같아. 


마침 해가 서서히 지는 중이었는데, 주황빛과 보랏빛으로 물든 뉴욕은 아름답게 빛났어. 비싼 가격에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 풍경을 보면서 맥주를 안 마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하며 다른 일행은 맥주랑 감자칩을 사서 먹었어.맥주랑 감자칩이라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잖아. “아, 정말 너무 멋지지 않아?” “진짜 황홀하다”하며 기뻐하는 일행을 볼수록 아빠 생각이 많이 났고, 덩달아 아쉬운 마음이 켜졌어. ‘아빠가 여기에 있었다면 진짜 기뻐했을 텐데...’하며 말이지. 


한참을 뉴욕의 야경을 넋 놓고 감상했는데, 내가 본 영화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뉴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 <스파이더맨>의 뉴욕,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뉴욕, <비긴 어게인>의 뉴욕. 모두 아빠랑 같이 보거나 아빠가 내게 추천한 영화잖아? 드디어 나는 그 영화 속 세계를 누비고 있는데, 막상 그 안에 아빠는 없으니, 또 아쉬운 마음이 썰물처럼 몰려오더라고. 


아빠, 여행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걸까? 아빠는 나한테 입이 닳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재밌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했잖아. 나도 아빠의 생각에 공감했고, 돈, 권력, 명예가 보장되는 직업을 내게 강요하지 않는 아빠에게 늘 고마웠어.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냥 미래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돈을 많이 벌어서, 미국행 티켓을 끊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이 전망대에 와서 뉴욕의 야경을 보고 싶고, 아빠 사진도 멋지게 찍어주고 싶어.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올 수 있도록 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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