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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06. 2024

Central Park

Part 2. 편지-Off the Record

고모, 오늘 저는 센트럴파크에서 산책했어요.


저희 일정이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시작해서, 아침을 7시쯤 먹으면 시간이 남아요. 일정 후반부쯤 되니까 다들 힘들어서 숙소에서 쉬어요. 저도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고 다리가 계속 아파요. 더 자고 싶긴 했지만, 오늘은 그 욕구를 뿌리치고 하니와 연정이라는 친구와 아침 8시에 숙소 로비에서 만나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센트럴 파크를 아침에 산책하는 것이 제 로망 중 하나거든요. 


이왕 산책하는 거, ‘뉴요커’ 처럼 손에 커피 한 잔 들고 산책하고 싶어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렀어요. 한국에는 없는 메뉴인 Oat Shake Espresso를 시켰는데, 적당히 쓰면서 고소해서 고모가 좋아하실 맛이에요. 미국 스타벅스 컵은 한국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That first sip feeling’과 ‘Let us add a little joy to your day’라는 문구가 적혀 있더라고요. 커피 한 잔의 가치를 알리는 문구라서 저는 센스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모도 맛있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센트럴 파크로 친구들과 걸어가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 고모처럼 저도 여행의 묘미는 현지인 관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날씨가 추워서 다들 털 모자와 목도리로 무장한 채 다녀요. 장갑 낀 한 손으로는 트렌타 사이즈는 될 법한 길다란 커피를, 다른 손으로는 세련된 검정색 가죽 가방을 든 상태로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라고요. 한 블록마다 있는 카페에는 사람이 가득해요. 뉴요커는 아침에 베이글을 먹는다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뉴욕에 베이글집보다는 던킨 도넛이나 파리 바게트 같은 프렌차이즈가 많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있었어요


센트럴 파크는 제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너무 좋았던 장소였어요. 특히 접근성이 뛰어났어요. 언덕을 오를 필요도, 돈을 내야 할 필요도, 대중교통을 타야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무작정 뉴욕 거리를 직진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 파크에 도착해 있더라고요. 분위기도 활기찼어요. 사람 없는 공원은 무섭잖아요. 강아지와 노는 사람들, 정답게 대화하는 부부, 아침 조깅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특히 강아지들이 넓은 공원을 해맑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처음으로 ‘여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를 느낀 순간이었어요. 


같이 여행 갔을 때 고모는 사진 스팟을 기막히게 잘 찾아내셨잖아요, 저도 고모 덕분에 사진 찍는 감각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센트럴 파크의 초록빛 나무와 뉴욕의 파란빛 건물이 함께 어우러진 예쁜 장소가 있더라구요. 그 장소에서 친구들 사진을 멋지게 찍어줬어요. 사진에 저도 나름 아침 루틴으로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레 나왔더라고요.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어요. 고모도 제 사진을 찍어주실 때 저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요?


공원 산책을 좋아한다는 고모의 말이 기억이 남아요. 하이드파크에서 사과랑 커피를 먹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이 영국 생활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씀하셨죠. 미국은 복잡해서 싫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에 고모는 틀림없이 센트럴 파크만큼은 좋아하실 거예요. 시간 때문에 간단한 산책과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숙소로 바로 돌아가야 했어서 아쉬웠어요, 언젠가 날씨 좋은 날 고모와 함께 센트럴파크에서 돗자리를 피고, 같이 커피를 마시며 지금 공원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는 몇 마리인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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