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아까운 에세이다. 이 책은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적 있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마땅하다.
<여행의 기술>의 다른 이름은 '인문학 콘서트'라고 할 만하다. 작가는 자신의 여행 이야기만을 에세이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가가 여행하며 방문한 각 장소마다 '안내자'가 함께한다. 그 안내자는 샤를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빈센트 반 고흐 등 우리에게 친숙한 철학자와 예술가들이다. 철학, 예술, 문학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가 여행 에세이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 책의 예비 독자들에게 장담하고 싶다. 철학자와 예술가의 이야기는 작가가 여행에서 떠오른 상념들, 그리고 획득한 깨달음과 매끄럽게 맞물리면서 여행의 가치를 더 깊고 풍부한 맥락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를테면 작가는 집단적 고립과 도시 속 개인을 화폭으로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묘사함으로써 혼자 여행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전달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대륙을 떠난 알렉산더 폰 훔불트의 생애를 설명함으로써 여행지에서 느끼는 궁금증을 표현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이야기를 끌고 들어와서 자신의 경험과 탁월하게 조합해내고, 그 배합에서 여행이 선사하는 가치까지 끌어내고 마는 작가의 역량 덕분에 독자는 책을 통해 여행에 대한 감상을 넘어 여행에 대한 통찰까지 얻어갈 수 있다.
작가는 여행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행을 뭉뜽그리거나 단순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에는 출발과 도착과 귀환이 있다. 여행에는 풍경과 사람들과 건물이 있다. 여행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 여행에는 기대-실망 혹은 무관심-관심의 서사가 있다. 여행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이해하고 있는 작가는 여행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하나씩 섬세하게 사유한다. 책은 크게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한'의 구조를 갖추고 있고, 각 대단원 아래에는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겪는 기대의 감정'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이국적인 문화' '여행하면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식' '시골 여행지와 도시 여행지가 지닌 상반된 매력' 등의 소주제가 수록되어 있다. 독자는 여행에 대한 이해, 애정, 존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왜 기차 차창으로 풍경을 보면서 뜻밖의 생각에 잠기는 것일까?' '왜 광활한 자연의 풍경을 보면 해방감이 찾아올까?' '왜 내가 사는 동네는 지루해하면서 여행지의 동네에는 특별함을 느낄까?' 하는 여행의 궁금증에 관한 작가의 명쾌하고도 독창적인 생각을 접할 수 있고, 작가와 마찬가지로 여행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향유하려는 태도를 갖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