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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ug 07. 2024

패스트 라이브즈

패스트 라이브즈의 첫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노라, 혜성, 아서는 식당에서 대화한다. 사람들은 작품의 핵심 등장인물을 구경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추측한다. 직장 동료, 부부와 친구,가족과 친척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지만, 모두 빗나갔다. 노라, 혜성, 아서는 '팔천 겹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기 때문이다. 인연을 모른 채 통속적인 사고에 머무른 사람들과, 인연을 이해한 채 성숙한 관계를 맺어가는 주인공을 대조함으로써 작품은 '인연'이라는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마음을 섬세하게 나타낸다. 혜성은 한국어 키보드를 쓰지만 노라는 영어 키보드를 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세팅된 그들의 핸드폰과 노트북은 그들 간 거리감을 나타낸다. 노라가 종이에 한글 자판을 그리고 한글 타이핑을 연습하는 장면은 곧 그들 간의 거리를 가까이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애틋하게 다가온다. 비단 혜성과 노라 사이의 정서적 관계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동생의 영어 이름을 뺏으려고 하고, 2등이 되어서 속상해하고, 노벨상을 탈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어린 노라는 꿈이 크고 성취욕이 강하다. 노라가 어른이 될수록 그녀의 꿈은 노벨상에서 퓰리처상, 퓰리처상에서 토니상으로 작아진다. 앞을 보며 달려가려고 해도 뉴욕 대신 서울의 풍경이 그녀 눈 앞에 아른거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품어야 할지 떠나보내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러한 노라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과거의 추억과 순수한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러할 수 없는 현실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등장인물은 각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혜성은 용기를 지녔다. 노라를 다시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뉴욕으로 날아온다. 작품의 클라이멕스에는 옛날에 자신은 노라를 좋아했고, 항상 노라는 자신에게 늘 떠나는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그의 용기는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연이 지닌 소중함을 환기해준다. 아서는 배려심을 지녔다. 혜성과 노라의 애틋한 사이를 이해하고, 둘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어색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혜성과 작별한 이후 속상해하는 노라를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그의 배려심은 신뢰와 기다림으로 인연을 수용하는 자세를 상기한다. 떠나보내야만 하는 인연,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인연을 마주한 인물들의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기에 작품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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