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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붐은 온다
-팟캐스트 추천

by 온화

인스타 릴스를 보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고, 유튜브 추천 피드에는 흥미가 가는 영상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책에 집중이 되는 것도 아닐 때 팟캐스트로 손이 가게 된다. 갈수록 짧아지기만 하는 콘텐츠 세계에서 줏대있게 롱폼을 고집하고, 보는 재미가 주는 편리함과 자극을 과감히 내던진 채 오직 듣는 이의 청각에 기댄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개성적인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요즘은 좋아하는 팟캐스트 채널의 한 에피소드를 진득하게 듣는 것이 묘하게 힐링이 된다. 혹시 필자처럼 팟캐스트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가 평소에 자주 듣는 팟캐스트 중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채널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팟캐스트

'혼자 있는 게 좋아'

제목부터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팟캐스트는 (팟캐스트 소개 문구를 발췌하였다) 팟캐스터가 매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제삼아 이야기하는 채널이다. 2명에서 4명 사이의 팟캐스터가 나와서 서로의 지식이나 견해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팟캐스터 간 소위 티키타카나 케미가 재미를 유발하는 것이 팟캐스트의 보편적인 문법이다. 그 반면, 오직 한 명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우직하게 채운다는 측면에서 '혼자 있는 게 좋아'가 인상적이다. '혼자 있는 게 좋아'가 다루는 주제는 어느 한 카테고리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정리를 해보자면, 주로 팟캐스터의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 공유, 최근 트렌드나 논쟁이 되는 이슈에 대한 팟캐스터의 생각,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 대한 팟캐스터의 견해, 팟캐스터의 경험치로부터 우러나온 인사이트가 팟캐스트의 주제가 된다. <인간관계가 좁아도 사는 데 문제가 없을까?> <신용카드와 작별하기><직장인 VS 자영업자> <영감과 표절 사이> 등등, 제목을 딱 읽었을 때 호기심이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많고, 팟캐스트 분량도 너무 짧지도(10분 미만) 길지도(1시간 이상) 않게 30분 분량으로 적당하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주제를 골라 입문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딱 정해진 정답이 없는 삶의 난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펼쳐나갈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이 팟캐스트를 통해 듣는다는 것이, 무언가를 접하고 소비하기만 할 뿐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세상에서 좋은 영감과 자극이 된다.


두 번째 팟캐스트

'우주먼지들의 하찮은 이야기'

제목에는 '하찮은'이라는 워딩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하찮지 않고 귀엽고 재밌다는 것이 이 팟캐스트의 특징이다. 현재는 사회인이지만 옛날에 영화과 전공이였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팟캐스터 3명 (그냥, 까불이, 초하)이 진행하는 이 팟캐스트는 첫 번째 팟케스트와 마찬가지로 단일하게 규정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정리해보자면 팟캐스터들의 근황토크, 서로 다른 취향/가치관 이야기, 사연에 대한 고민상담, 특정 주제에 대한 각자의 경험 공유, 게스트 초대석 등이 주를 이룬다. 이 팟캐스트의 매력을 서술해보자면, 매우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괜히 분위기 이상해질까봐' 'TMI가 될까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각자의 생각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꼬아 듣게 되는 건 진짜 말이 꼬여서일까 아니면 내가 꼬여서일까> <외모 콤플렉스 췍~> <현명하게 화내는 방법 따위><나를 미워하는 마음> <고치고 싶은 나의 언어습관> 같은 에피소드가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매력을 꼽아보자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구독자의 경우 일상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팟캐스터 모두 연애, 취업, 자취, 인간관계, 덕질, 자기계발 등 우리의 일상에서 화두나 고민거리가 되는 것들에 대한 경험치를 많이 쌓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터득한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에피소드에서 구독자들에게 아낌없이 공유해준다. <장기 연애와 불분명한 미래> <괴로운 인간관계 이어가는 법> <프로 하객러들의 축의금 이야기> <서울 한복판에서 자취방 구하기> 같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이 팟캐스트를 통해 본인에게 딱 필요했던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세 팟캐스터의 케미가 좋다는 것이 이 팟캐스트의 매력이다. 팟캐스터들은 서로 디스를 하기도 하고, 서로 칭찬을 하기도 하면서 대화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게 만들며, 각자 뛰어난 입담을 가지고 있다. 이 팟캐스트를 듣는 것은 마치 카페에 갔는데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몰래 훔쳐 듣는 것과도 같다. 친구들과 재밌는 수다 한바탕하고 싶지만 여건이나 체력이 안 될 때, 혹은 잠은 오지 않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조금 외로울 때 이 팟캐스트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세 번째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앞서 소개한 두 개의 팟캐스트와 달리, 이 팟캐스트는 '영화'라는 확실한 주제를 갖고 있다. 유명한 영화평론가인 김혜리 기자와 최다은 피디, 임수정 배우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그 임수정 배우님 맞다)가 진행하는 이 팟캐스트는 매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영화를 선정한다. 에피소드는 김혜리 기자가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한 다음 세 명이 함께 (때로는 임수정 배우를 제외한 2명이서) 영화에 대한 각자의 감상과 해석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팟캐스트의 매력을 꼽아보자면, 먼저 에피소드별 영화를 잘 선정한다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영화에 관심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영화(예시: 듄, 미션 임파서블, 오펜하이머, 비포 선라이즈, 존 윅, 탑건)와, 큰 인기와 주목을 받지는 못했어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거나, 실험적/도전적이거나, 의미 있는 메시지나 통찰을 담은 영화(예시: 리얼 페인, 스펜서, 애프터썬, 서브스턴스)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 있게 다룬다. 영화 취향은 개인마다 천차만별한데, 메이저한 영화 취향을 가진 이와 마이너한 영화 취향을 가진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 팟캐스트의 매력이다. 다음으로, 영화에 대한 표현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모든 내용을 가장 재밌는 주요 장면 위주로 편집하여 소개하는 영화 요약 유튜브 영상과 달리, 이 팟캐스트에서 김혜리 기자는 영화의 핵심 줄기가 되는 내용 그리고 주연 캐릭터들의 서사를 모두 언어로 설명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 역시, 분명 기억에 남는 연기나 장면이긴 하지만 찰나이거나 미묘해서 뭐라 언어로 이름표를 붙여야할지 모를 느낌에 대하여 김혜리 기자가 찰떡같이 감상을 표현해준다. 무엇이든지 스스로의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해봐야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되는 만큼, 이 팟캐스트는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대하는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다. 영화를 따로 전공하거나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영화를 분석할 때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인물의 성격 및 서사에 주로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반면 이 팟캐스트에서 최다은 피디는 영화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배경음악과 OST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며, 감독이 특정한 장르의 음악을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선정한 의도가 무엇일지, 음악이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거나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편 임수정 배우는 영화에서 주연/조연을 맡은 배우들이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특정 장면에서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지, 어떤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의 연기 경험에 빗대어가며 얘기한다. 영화를 보는 시야를 넓혀줄 수 있고, 본인이 인상깊게 본 영화가 어떻게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를 접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이 팟캐스트의 강점이다. 영화에 관심있는 누구나 재밌고 유익하게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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