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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19. 2023

[D+88] 인터미션

대한민국, 인천

인천 공항에서의 11시간은 촘촘하게 스케줄을 짜야했다.


나와 함께 뉴질랜드를 여행할 친구 H와 절친 J를 공항에서 만나는 게 가장 큰 이벤트긴 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끝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으니.


먼저, 인천이 내게는 스탑오버를 하는 환승공항이지만 짐을 찾아 청사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 두고 갈 짐들을 솎아내는 작업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점심시간까지 좀 편하게 쉬려고 공항 지하에 있는 '다락휴 캡슐 호텔'을 예약해 뒀다.


새벽 6시가량에 도착한 터라 체크인은 못하고 로비에 짐만 맡겨둔 채 바로 향한 곳은 그랜드 하얏트 인천. 대한항공 프레스티지를 타고 입국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KAL 샤워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행하며 샤워는 해도 욕조에 몸을 담그는 건 해보질 못해서, 두 달 만에 열심히 묵은 때를 벗겼다.


그렇게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다락휴로 돌아오니 몸이 노곤노곤해지더니 짐 정리고 뭐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한 12시까지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버렸다.


아직 해도 뜨기 전, 묵은 때를 벗기러 가는 길


잠시 머물러 가기에 더없이 훌륭했던 캡슐 호텔


다시 만난 내 친구 J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항암치료 전이라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이라 폭풍 안심.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둘이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지.


J가 사족을 못 쓰는 고수 페이스토와 발사믹 식초를 먼저 선물로 안겼다. 좋아하는 친구 얼굴을 보니 포틀랜드에서부터 이 날을 위해 고이고이 모셔온 보람이 있었네.  


그런 뒤 거의 대부분의 옷들도 빼고(뉴질랜드는 여름이라) 여분의 운동화도 빼고 이고 지고 다닌 기념품들도 빼고 나니 이제 정말 배낭이 더 이상 애물단지로 보이지 않는다. 이 짐들은 이제 친구의 차에 옮겨놓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져가기로 했다.


드디어 합류한 친구 H와 함께 우리 셋은 한정식 집에서 거나한 점심을 먹었다. 공깃밥 두 공기를 거뜬하게 클리어시키고 근처 병원에 들러 다 떨어져 버린 진통제도 처방받았다. 여행을 출발하며 건강보험을 정지시켰더니 '무자격자'로 뜨며 보험 혜택 제로. 별 경험을 다해 보는구나.


이렇게 바쁘게,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한 11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 떠날 시간이다. 25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뉴질랜드.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이 이렇게 큰 것인지 그동안 잊어먹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받은 에너지, 동행자에게서 받은 에너지, 한식에서 받은(?) 에너지로 보름간의 여행을 미친 듯이 즐겁게 보내야지.


새로운 여행, 2부의 시작이다.  


비행기에서의 부의 상징은 창문 갯수라지


이코노미에 앉아있는 H를 위해 알쓰인 나는, 내 몫의 술을 열심히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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