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뉴질랜드를 여행할 친구 H와 절친 J를 공항에서 만나는 게 가장 큰 이벤트긴 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끝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으니.
먼저, 인천이 내게는 스탑오버를 하는 환승공항이지만 짐을 찾아 청사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 두고 갈 짐들을 솎아내는 작업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점심시간까지 좀 편하게 쉬려고 공항 지하에 있는 '다락휴 캡슐 호텔'을 예약해 뒀다.
새벽 6시가량에 도착한 터라 체크인은 못하고 로비에 짐만 맡겨둔 채 바로 향한 곳은 그랜드 하얏트 인천. 대한항공 프레스티지를 타고 입국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KAL 샤워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행하며 샤워는 해도 욕조에 몸을 담그는 건 해보질 못해서, 두 달 만에 열심히 묵은 때를 벗겼다.
그렇게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다락휴로 돌아오니 몸이 노곤노곤해지더니 짐 정리고 뭐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한 12시까지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버렸다.
아직 해도 뜨기 전, 묵은 때를 벗기러 가는 길
잠시 머물러 가기에 더없이 훌륭했던 캡슐 호텔
다시 만난 내 친구 J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항암치료 전이라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이라 폭풍 안심.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둘이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지.
J가 사족을 못 쓰는 고수 페이스토와 발사믹 식초를 먼저 선물로 안겼다. 좋아하는 친구 얼굴을 보니 포틀랜드에서부터 이 날을 위해 고이고이 모셔온 보람이 있었네.
그런 뒤 거의 대부분의 옷들도 빼고(뉴질랜드는 여름이라) 여분의 운동화도 빼고 이고 지고 다닌 기념품들도 빼고 나니 이제 정말 배낭이 더 이상 애물단지로 보이지 않는다. 이 짐들은 이제 친구의 차에 옮겨놓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져가기로 했다.
드디어 합류한 친구 H와 함께 우리 셋은 한정식 집에서 거나한 점심을 먹었다. 공깃밥 두 공기를 거뜬하게 클리어시키고 근처 병원에 들러 다 떨어져 버린 진통제도 처방받았다. 여행을 출발하며 건강보험을 정지시켰더니 '무자격자'로 뜨며 보험 혜택 제로. 별 경험을 다해 보는구나.
이렇게 바쁘게,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한 11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 떠날 시간이다. 25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뉴질랜드.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이 이렇게 큰 것인지 그동안 잊어먹고 있었다. 친구에게서 받은 에너지, 동행자에게서 받은 에너지, 한식에서 받은(?) 에너지로 보름간의 여행을 미친 듯이 즐겁게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