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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31. 2023

[NZ 05] 원망스러운 몸뚱아리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여름의 밀포드사운드는, 그랜드캐년에서 느낀 자연의 웅장함을 그렇게까지 잘 느끼진 못했다. 1km가 넘는다는 산의 높이를, 가까이에서 봐도 잘 실감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겨울에 눈이 덮이면 이 절벽도 훨씬 장관일 거라는 확신은 들었다.


평생 다시 한번 더 올리는 만무 하지만 그저 크루즈 안과 밖을 오가며 파도만큼이나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협곡 사이를 빠져나와 테즈만 해에 잠깐 머물렀을 땐 검은색에 가까운 바닷물색과 큰 굴곡의 파도 때문에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크루즈 선장은 우리를 폭포 밑으로 데려가 물샤워도 시켰다. 마구마구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는 사람들 뒤에 서서 나는, 단벌신사가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만 계속했다. 하지만 기념으로 남길 사진 한 방만 찍고 들어가야지 하다가 타이밍을 못 맞추며 나도 물샤워를 당하고 말았다.


가지고 온 옷 모두를 꺼내 입고 단단히 준비를 했었음에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몸이 으슬거리기 시작했다. 느낌이 왔다. 감기였다. 미국에선 코와 기침이더니 이번엔 제대로 몸살감기다.


H가 가져온 비상 감기약을 먹고 누웠지만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만큼 끙끙거렸다. 새벽에 옆에서 잠을 자던 H가 괜찮냐고 물어도, 대답조차 나오질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아픈데 약이 드는 느낌은 1도 없고 그저 머릿속으로 나 때문에 H가 여행을 망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만 하느라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한국에선 몇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잘 걸리지 않던 감기가, 어쩐 일인지 이 3개월 동안 두 번이나 찾아왔다. 항암의 부작용으로 망가진 내 몸이, 나의 세포들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게 분명했다. 


이 원망스러운 몸뚱아리를 우얄꼬.


우리가 탈 크루즈선. 15km가량의 협곡을 따라 테즈만 해까지 나갔다 돌아오는 코스


산과 산 사이의 수평선에 다다르면 그대로 추락할 것 같은 비현실적 풍광  


멀리서 보아야 이쁘다


폭포는 모름지기 유리창 안에서 봐야


감기와 맞바꿔버린 영상


밀포드 사운드를 배경으로 두고 먹는 라면맛은 꿀맛


오늘의 이동 [테아나우 <--> 밀포드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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