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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Feb 01. 2023

[NZ 06] 내가 여행을 끊지 못하는 이유

뉴질랜드, 블러프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밤새 통증과 속상함에 뜬 눈으로 보냈더니, 아침이 되어도 감기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뉴질랜드 최남단 도시 중 하나인 '블러프'로의 이동이 있는 날이다. 다행히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위험한 산길도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우리는 누가 운전을 해야 할 것인가로 고민에 빠졌다. 


운전이 미숙한 초보자가 반대 방향의 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것과 고열에 시달리는 감기 환자가 운전을 하는 것, 둘 중 어떤 선택을 해야 우리 둘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지 H와 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실 누가 운전을 하든 상대가 걱정되어(물론 스스로의 안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을 터라 그나마 운전이 익숙한 내가 하는 편이 두 사람 모두 마음을 덜 졸일 거라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운전 중 돌발상황에의 대처가 더 중요했기에.


온몸은 욱신거리고 두통이 살짝 있긴 해도 머리가 멍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운전하다 졸릴까 봐 아침 약을 패스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밤새 수천번은 외운, '이 여행을 망치면 안 된다'라는 주문에 걸려 있기도 했다. 그저 정신력의 승리.


그렇게 우리나라 시골 읍내 같은 몇 개의 동네들을 통과하며 내려가던 우리는,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서 약국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해열제가 있으면 한 통 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약국은 꽤나 컸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백인 약사 한 분과 젊은 동양인 약사 두 사람이 운영 중이었다. 일단은 내 증상을 설명하고 복합감기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내리지 않아 해열제를 따로 먹어볼까 한다고 했다. 동양인 약사가 우리를 진열장 앞으로 데려갔고 여러 종류의 약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와 씨,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뭐가 이리도 많아?


우리끼리 한국말로 떠드는 순간, 그 약사가 물었다. 한국분들이냐고.


약사는 한국인이었다. 이 동네에서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터라 자기도 우리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을 했단다. 덕분에 우리는 내 증상을 더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그가,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비타민 C 한 통을 약과 함께 주었다. 이역만리에서 우연히 만난 동포가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이라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그의 이 소소한 친절함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의 힘은 참 신기하다.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으나 이런 의도치 않은 타인의 친절을 받고 나니 우울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내 기분이 전염이 되었는지 H도 그제야 편히 조수석에 기대앉았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낯설고 신기한 것들을 많이 봐서가 아니라, 이렇게 여행 중 마주치는 어떤 사람과의 인연 혹은 추억이 쌓이는 게 좋기 때문이다.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껏, 그리고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는 이유다.


중간에 들른 인터카길이란 도시의 파이 맛집. 그러나 나는 아무 맛을 못 느끼고


블러프의 숙소. 나는 약을 먹고 한숨을 자고 산책 좋아하는 H는 동네 한 바퀴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되니 일어났다. 식당 근처 산책 겸 등대까지 걷기


우리가 얼마나 먼 곳으로 떠나왔는지 알겠다


친절한 약사님 덕일까,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오늘의 이동 [테아나우 -> 블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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