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퀸즈타운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특히 숙소에 대해서는 몇 만 원 아끼려다가 더는 팔팔하지 않은 몸뚱이 때문에 여행 전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해서다. 그랬던 우리가 어쩌다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는가.
이번 사태로 인해, 예상했던 여행 경비를 오버하고도 한참 오버해 버린 탓이다. 겨우 예약에 성공한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처음보다 5배가량 비싸게 산 데다 우리가 타지 못한 항공권도 환불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했다.
이건 자연재해인데, 우리가 지각해서 비행기를 놓친 게 아닌데, 왜 그 손해를 우리가 고스란히 입어야 하는가. 가장 억울했던 건 사실 금전적 손해보다 우리의 남은 여행 자체가 싸그리 망가져 버렸는데 이게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거였다.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H와 나는 전투모드가 발동했다.
20년 만에 강수위가 최고치를 찍었다는 온 나라가 아는 엄청난 재난이었으니 그 팩트 하나를 가지고 에어비앤비, 렌터카 회사, 투어 오피스, 항공사에 차례로 연락을 해봤다. 전화와 문자와 메일을 보내놓고 기다리니 하나씩 답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렌터카 회사와 투어 오피스는 한 방에 위약금도 없이 우리가 이미 지불해 놓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대부분 카드로 결제를 했으니 카드 취소를 해 준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경우는 놀라움을 넘어 감동까지 선사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호스트는 우리가 당일에 예약 취소를 했기 때문에 환불을 못해주겠다고 했었는데 원래 규정이 그러니, 이거야말로 정말 날린 돈이라 생각했었다.
혹시나 하고 고객센터에 하소연을 하고 기다렸더니, 에어비앤비 측에서는 NZ 정부로부터 받은 재난 문자 캡쳐본, NZ 교통국의 당시 공지글 등 증빙자료가 있으면 호스트의 환불 거절과 상관없이 자기네가 전액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케리케리의 호스트에게도 숙박 당일에 취소를 한 셈이었는데(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는 최종 판단을 그 다음날 새벽에 했으므로) 이것 역시 환불을 받지 못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남섬 소식을 들었다며 되려 우리의 여행이 망가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더니 전액 환불을 턱!
이게 무슨 일인가.
전화 연결도 되지 않고 메일에 답도 없는 항공사를 제외하고 우린, 우리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금액을 돌려받았다. 우리 둘은 눈물이 찔끔 났다. 돈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처음엔 물론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볼까 하고 큰 기대 없이 돌린 연락이었지만 끝에 가선 가슴이 뭉클해진 거다.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고, 현 상황을 이해해 주고, 방법을 찾아주고, 안타까워해 준, 사람들 덕에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오늘 하루 거의 먹은 게 없음에도 입맛이 없어서,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던 먹다 남은 치즈 조각과 맥주를 앞에 두고 공동 주방의 테이블에 앉았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낄낄댔다. 이제야, 드디어 웃을 수 있다니.
그러면서 우리 둘 다 외친 한 마디.
이제 집에 돌아가면
당분간 여행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