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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Feb 16. 2023

[NZ 16] 드디어 남섬 탈출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배가 터지게 먹고 나면 잠깐은 그 음식이 보기 싫은 원리랄까.


H도 나도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인생의 절반을 돈 벌어 여행 가는 걸로 채웠던 사람들인데 우리 둘의 입에서 동시에 '이제 당분간 여행은 생각도 하기 싫다'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 이번 사태의 여파 혹은 충격이 엄청났다는 소리다.


단순히 어이없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라지만 우리가 그날 아침 도로 폐쇄를 마주한 뒤 머리를 굴려야 했던,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과 거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을 들으면 우리의 이 결론이 결코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다행히 항공료(에어 뉴질랜드는 전화도 받지 않을 거면서 고객센터는 왜 둔 것인가!)를 제외하고 모든 경비는 돌려받았지만 남은 여행 일정을 싸그리 망가뜨리고도 남은 이 일에 대해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오늘 우리는 북섬의 한 항구마을에서 새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한잔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케이프 레잉가로 떠날 투어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퀸즈타운의 허름한 백패커에서 미지근한 맥주와 며칠째 들고 다닌 말라붙은 치즈 조각을 안주로 먹으며 이 여행을 저주하고 앉아있었다.


어쨌든 범람한 강의 수위는 여전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드디어 남섬을 탈출했다. 사람 엿 먹이는 듯한 퀸즈타운의 파란 하늘을 보고 실컷 욕지거리를 날리며.


저 맑은 하늘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의 탈출을 도운 비행기와 경유지인 웰링턴 공항에서 마주친 영화 <호빗>의 용, 스마우그


오클랜드에서는 원래 1박만 하려 했지만 우리의 계획은 무너졌고 다행히 예약해 뒀던 에어비앤비에 여유가 있어 추가 예약을 받아줬다. 숙소의 뷰가 너무 좋아 예약을 한 곳인데, 예상치 못하게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노란 털뭉치들을 조몰락거리고 있자니 그제야 마음이 좀 풀어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와 전경. 여전히 파란 하늘만 보면 열불이 난다


백만 년 만에 만나는 소듕한 고양이 투바와 그리핀


어서 집에 가서 우리 애들을 만지고 싶다


모아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동네 산책 겸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숙소가 '마운틴 이든' 근처였는데 사실 첫 번째 뉴질랜드 살이를 할 때 거의 와보지 못한 동네라 뭔가 많이 낯설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25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오클랜드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이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도시에서 내일, 내가 이 여행의 마침표를 뉴질랜드에서 찍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그녀'를 드디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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