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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Jul 19. 2023

경주 서출지(書出池)의 이요당(二樂堂).

북한산인(北漢山人)의 답사기. 1




 경상북도 경주를 말하면 열에 아홉은 신라의 천년로 뽑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신라에서 통일신라까지 천년이라는 시간을 지속했을 정도로 경주는 천년고도의 땅이다. 더불어 신라 하면 불교를 떠오를 만큼 불국토의 나라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불교유적지이며 불국사, 석굴암, 감은사지, 황룡사9층목탑지 등 수 많은 문화유산을 사유한 역사의 도시다.


 그래서 경주하면 불교 이외 볼 것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경주는 신라부터 조선 및 근대유산까지 다양한 역사를 공유한 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양반층의 가옥과 뼈대(代)가 깊은 종가(宗家)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양동마을이 그 대표라 할 수 있으며, 종가(宗家)로는 경주최부자집이 있다. 이렇듯 경주는 불교유적지만큼이나 조선 시대의 한옥도 답사하기 좋은 도시다. 그중에서도 여름에 꼭 가봐야 되는 별서(別墅)가 있으니 바로 경주 남산자락 아래에 있는 이요당(二樂堂)이다.


서출지(書出池)의 이요당(二樂堂)


 경주 남산 아래에 풍아(風雅)한 건물이 있어 의야 할 수 있다. 사실 경주 남산은 불국사(佛國寺)의 토함산(吐含山)만큼이나 불교유적지가 많은 산이다. 경주 남산은 석불좌상, 용장사지삼층석탑, 칠불암마애불상군 등의 11개 보물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 등의 12개 사적 등 신라의 역사를 간직한 귀한 산이다. 이러한 신라의 보물을 품은 산자락 아래에 조선시대의 별서(別墅)가 있다.


 이요당(二樂堂)이 자리잡은 연못은 서출지(書出池)라는 연못으로 신라의 구전설화를 간직한 연못이다. 신라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서출지(書出池)의 설화(說話)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한 무사가 쥐의 아내로 까마귀를 연못에 도착하니 신령스러운 노인이 왕이 위험하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무사에게 전달하며, 무사는 그 편지를 왕에게 알리며 왕은 그 편지를 토대로 암살을 방지하였다고 한다. 그 신라의 왕이 21대 왕 소지왕(炤知王, 재위 479~500)이다. 이러한 구전설화를 간직한 서출지(書出池)는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잘 관리되어 있다.


 이렇듯 경주 남산 아래 서출지(書出池)는 신라 소지왕 때부터 조성된 연못이다. 시간이 흘러 조선 현종때 임적(任勣, 1612~1672)이라는 문인이 서출지(書出池) 주변에 터를 잡고 이요당(二樂堂)이라는 별서(別墅)를 조성하였다.   


서출지(書出池)의 이요당(二樂堂)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정자명은 『논어』의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仁者樂山],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에서 따온 것이다. 정자명을 봐도 자연함축이 느껴지듯 이요당(二樂堂)의 주변 정관만 보더라도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절정임이 느껴진다.  신라의 설화(說話)를 간직한 연못이 정면에 있고, 경주의 보물을 품은 남산을 뒷면으로 끼고 있으니 이만한 지복(至福)이 또 있을 까 싶을 정도이다. 

    

 이요당(二樂堂)은 난간 사랑채 형식으로 지어저 웅장함과 위엄을 갖춘 건축물이다. 더불어 연못과 산과 어우러져 있어 소박함과 단아함까지 가졌다.  이런 별서(別墅)를 조성할 정도의 인물이면 향락(享樂)을 즐길만하지만, 서출지(書出池)에 이요당(二樂堂)을 세운 임적(任勣, 1612~1672)은 평소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가뭄이 들 때는 연못에 물길을 터주거나 혹은 지하수를 찾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하며 이요(二樂)라는 말처럼 인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신라의 설화(說話)만큼이나 애민()적인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지역사회에서 전승되어 관리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인문학적 가치가 유지되길 바래어 본다.     


서출지(書出池)의 이요당(二樂堂)의 홍연(紅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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