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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진 모음집 Nov 16. 2022

무너지는 학생사회를 이끌어가는
무모한 후배들에게

연고대 전직 비대위원장들이 바라본 학생사회 1. - 연세대 박요한

연세대학교 2019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 제54대 총학생회장 박요한

<학생사회 lab>은 학생사회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학우들의 의견을 기고받는 '청사진 모음집'의 칼럼 시리즈다. 11월 선거를 앞둔 지금, 창간 기념으로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전직 비상대책위원장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학생사회가 전국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여러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서는 입후보한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줄줄이 무산된다. 출마한 선거운동본부가 있더라도 단독 후보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러한 경우에도 개표의 최소 요건인 50%의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개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학생회장단 궐위 시 임시로 설립되는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제 일상적인 기구가 되었다. 학생회 선거 공고가 올라오면 정책이나 비전보다도, 학생회장 하면 무슨 스펙이 되느냐는 말들이 더욱 인기를 끈다.


학생사회의 위기는 사실 바로 우리 사회, 특히 우리 세대의 ‘공동체성의 위기’를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 세대의 단면이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10대부터 십여년 간 수능 배치표상의 성적표와 과목의 난이도를 바탕으로 서열을 강조해온 공동체 속에서 (SKY, 인서울, 지거국 – 혹은 의대, 공대, 이과, 문과 – 등) 개인이 공동체에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은 ‘불안’이다. 서열을 나누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는 사회적 서열이나 권력관계가 존재하지만, 수능 성적표라는 단일한 가치체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과 그에 따른 경쟁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되는 공간 속에서 개인은 협동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생사회 위기는 공동체의 위기이고, 이는 시대적인 현상일 뿐이다. 우리 세대의 문제지만 우리 세대가 자초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한국 사회가 급속하게 선진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과정, IMF 사태,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과 같은 여러 사회적 현상들이 중첩되어 나타난 문제이니 어떤 세대가 아주 나빠서 생긴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바꿀 수 없다거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흐름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회적 갈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능력은 보다 떨어질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내는 것이 인간의 위대한 능력 아니겠는가. 나는 수년째 학생회 활동을 하고 다양한 선, 후배들을 지켜보며 우리가 충분히 뭉쳐서 노력한다면 공동체성의 위기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확신한다. 이에 무너지는 학생사회를 아직까지도 붙잡고 있는 무모한 –그러나 존경하는- 우리 후배들에게 당부의 형식을 빌려 몇 가지 사유를 공유하고자 한다.


박요한 (연세대 신학과 16)

첫 번째는, 공동체가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학생회의 간식행사나 제휴행사와 같은 사업들을 비난하며 ‘민주화 운동까지 하며 사회를 바꿔왔던’ 학생회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지적은 완전히 틀렸다. 지금 다수 학생들의 공동체에 대한 의식은 80년대와 판이하게 다르다. 학생회가 자신에게 최소한의 이익이라도 된다고 생각할 때 학생들은 학생회에, 우리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총학생회의 노력으로 재수강 제한 횟수를 늘린 것, GPA 환산 식을 바꾸어 학점 표시를 개선한 것은 아주 중요한 성과이다. 학생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학점, 취업, 진로 문제에 있어서 총학생회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집단적 경험은 총학생회에 참여하는 일이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두 번째는, 학생 다수의 평균적인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 연대, 현 정권에 대한 평가, 환경, 여러 사회운동은 모두 학생회가 당연히 관여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학생회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성격의 것도 있다. 그러나, 의제를 선택할 때는 물론 그 목소리를 내는 세기와 방법은 다수 학생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적인 구호들이 당장 현실화된다면 아주 좋겠지만, 우리는 현실의 토양 위에서 공동체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된 불안함은 취업이나 진로에 관한 것인데,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관이 정권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면 당연히 학생들은 학생회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총학생회는 대의기관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기억하며 신중하게 의제를 다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학생회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고, 제공해줄 수 있다는 인식을 넘어 자신들이 이 변화의 주체로써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고, 공동체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자신들이 이 공동체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속에서 리더를 꿈꾸는 후배와 자주 소통하고, 공동체를 바꾸려는 다양한 단위들과 연대하여 힘을 실어주고, 다양한 기층 학생회를 기르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함께로써 더 강하다’는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최근 몇 년간 총장 선출 제도를 개선하고, 교학협의회를 설치하여 재수강 제도를 개선하고, GPA 환산식을 고치는 등 커다란 성과들을 이루어 냈다. 이런 공동체에 속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당연히 로스쿨 진학이나 취업에 유리한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단순히 도덕적이기 위해서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좋은 로스쿨을 가고 더 좋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그 다음 단계로써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적인 문제나 환경 문제를 설득력 있게 논의하는 것도 역시 같은 논리에서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일 것이다.


오늘 내가 지적한 문제는 비단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에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러한 대원칙에 맞는 구체적인 목표들, 정책들을 끊임 없이 고민하고 창의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본지가 그러한 역할을 다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우리 세대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 원래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똑똑하고, 디지털로 빠르게 연결되며, 기회와 상황이 제공되었을 때에는 막중한 책임감에 익숙한 세대이기에 여러 부침이 있겠지만 나는 그 어떤 세대보다 세련되고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정말로 확신하고 낙관하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지치지 않고 계속 노력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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