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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꽃다리 Aug 28. 2023

[산숲 책숲]
천마산 너머, 팔현리  계곡

천마산 너머, 팔현리 계곡

7이번 달로 남양주에 온 지 8년이 된다. 8년 전과 비교하면 수만 가구 아파트가 들어서서 8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도시의 속살은 뚱뚱해졌지만 아름다운 호만천백봉산과 천마산은 아직 맑고 푸르다천마산은 임도 옆에 작은 물길이 흘러서 산을 오르는 내내 물을 보며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산 초입부터 임도 끝까지 온통 맑은 물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게 정말 신기했었다그러나 이 산 속에도 지구 온난화에 가뭄이 깃들어 임도 옆의 물길은 어느 날부턴가 말라있다그래도 간간이 비 내리는 요즘계곡물 소리가 다시금 우렁차다

어제는 임도 끝에서 처음으로 팔현리 쪽 오솔길로 내려가 보았다오남리 호수공원 풍경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만으로 인적 하나 없는 좁은 길로 내려섰다계곡 물길은 천상의 풍경처럼 아름다운데 하루살이와 모기들이 극성이었다아무리 걸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정글 같은 숲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비좁은 오솔길은 개울로 이어져 길이 살짝 지워지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돌길도 있었다그러나 스쳐간 이들의 발자국이 모여 만들어진 그 좁은 오솔길이 초행길의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풍덩 뛰어들고 싶게 맑은 물절대로 위험하지 않을 적당한 깊이에 폭포를 이루어 흐르는 계곡물은 혼자 보기 아까웠다

팔현리 계곡을 따라 한 시간을 더 내려가 아스팔트 도로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펜션 마을논밭이 함께 있는 마을을 내가 방금 내려온 거대한 천마산이 폭 감싸고 있었다하늘 아래 높이 솟은 다채로운 초록 산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내 스마트폰 성능이 그 색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도로를 걷다가 마당에 딸린 텃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던 여인에게 버스 정류장을 물었더니여자 혼자서 어찌 천마산을 넘어왔느냐술은 한 잔 하느냐며 내 손을 잡아 주막으로 이끌었다막걸리에 닭발을 좋아하는 그녀가 잔을 권한다노모가 기력 쇠할 때 찾아서 가끔 식탁 위에 올리는 닭발그러나 집에서는 징그러워서 손도 안댔던 닭발그것도 뼈가 손가락 모양으로 선연하게 붙어있는 닭발을처음 만난 현진 언니와 우적우적 뜯어 먹었다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알맞게 양념 발라진 닭발의 감칠 맛 나는 쫀득함을 처음 알았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의 풍경을 보고그 고장의 음식을 먹고그 자역의 사람을 만나고 오라고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세상인가주변머리 없는 나는 멀리도 못가고 겨우 천마산 둘레를 헤매고 사는데 어제 저녁의 닭발 이벤트는 나의 남양주 생활 8년을 기념해 도착한 신의 선물 같았다팔현리의 넉넉한 인심처럼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담겨 온 싱싱하고 부드러운 상추를 노모의 식탁에 올려드리면서 오늘도 현진언니를 생각한다아름다운 천마산 숲에 감춰진 팔현리 계곡엘 언제쯤 또 갈 수 있을까모기들만 아니라면어느 가을 날 독사 출몰의 위험만 덜 수 있다면다시 가서 걷고 싶다그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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