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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Jan 19. 2023

고기맛을 알아버렸어

육아휴직 후 타사로 이직한 친구를 만나다.


친구 A에게서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여의도에 괜찮은 고깃집을 발견했다며 한 번 놀러 오라고 한다.

 

회사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던 시절.

나보다 먼저 도피성 육아휴직을 떠났다가, 휴직 기간 중 회사를 퇴사하고 다른 금융사로 들어간 친구이다. (이 친구도 나처럼 늦게 결혼을 하여, 늦게 아이를 둔 게.. 이때는 천만다행이었다.)


A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 역시 육아휴직으로 도피를 하며 쉬고 있을 당시, 우리는 거의 매주 술자리를 같이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육아휴직에서 복귀 한 이후에는 둘 다 회사를 다니다 보니,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는 없기에, 일주일에 한 번이 2주에 한 번, 3주에 한 번.. 점점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기는 했으나, 못해도 3주에 한 번은 만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6개월 전쯤부터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항상 하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B밀! 회사 다니기 싫어!”

 

“그래도 어쩌? 그냥 다녀야지..”

 

“넌? 너는 재밌어?”

 

“재밌긴. 회사에서는 영혼을 잠시 빼놓고 다녀. 그래도 회사 밖에서의 삶은 살만하니, 좀 더 버텨야 하지 않을까?”

 

“아… 나도 그렇긴 한데… 이직한 지 6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미쳐버릴 것만 같다. 전 직장처럼 스트레스가 심한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여기서 뭐 하나.. 싶어. 아무런 영혼도 없이 다니고 있고, 그냥 아침에 눈 뜰 때마다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넌 안 그러냐?”

 

“음.. 나도 그 맘 100% 이해하지.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이긴 한데,, 할 것도 있고.. 하니, 일단 좀 참고 1-2년만 더 다녀보려고.”

 

“휴우…”

 

마치 초등학생이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것처럼 금융회사의 상무란 녀석은 나를 만날 때마다 매번 징징대곤 했었다.


 


 


오랜만에 여의도 고깃집에서 우리 둘은 만난다.


“잘 지내? 와… 이번에는 거의 한 달 만에 만나는 거 아니냐? 기록 경신이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우리 둘은 술잔을 부딪힌다.

 

“B밀! 나 이번달까지만 다니고 회사 그만둔다.”

 

“뭐? 왜?”

 

“왜긴 왜야. 맨날 이야기했잖아. 회사 다니기 싫다고. 아… 진짜 못 해 먹겠어.”

 

“야. 거긴 여기처럼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며?”

 

“이게.. 스트레스의 문제가 아니야.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고기맛을 안다’고, 육아휴직을 한 번 해 봤더니, 더 이상 일이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도 못 참겠고, 그냥 가족들하고 더 시간을 보내고 싶고… 그리고 그냥 회사를 관둬도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건 한 번 쉬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거지만… 여하튼. 그냥 일 안 하고 쉬고 싶어.”

 

“에효. 그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냥 쉬어. 어떻게든 길은 생길 거야.”

 


 

회사의 동료들을 보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육아휴직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나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쉬고 나서 1-2달만 지나면, 정말 별거 아님을 알게 되고,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건.. 쉬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라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에게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예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이 친구처럼 ‘쉼’을 해 본 친구만이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얼마 뒤, 그 친구가 퇴사한다는 소문이 우리 회사까지 돌기 시작했다.

다양한 소문이 나고, 퇴직 사유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며 일부는 나에게 A와 친하니 이유를 알지 않냐며 물어보기도 한다.

 

“그냥 회사 다니기 싫대. 쉬고 싶대.”

라고 이야기 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딱히 뭐라고 이야기를 덧붙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우, 항상 나오는 말은 “그 분, 사실 집이 엄청 부자라면서요?”이다. 나 역시 육아휴직 동안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쉬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기에, 그 사람들에게 백날 이야기 해 봐야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는 본심이 아닐 거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할 것이다.

 

뭐..

A가 얼마나 오랫동안 쉴지, 다시 이 업으로 복귀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업으로 전환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금 용기를 낸 이 친구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아…

열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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