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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Feb 02. 2023

동물의 왕국

야! 그냥 다리 들고 싸라!


주말 오후.

별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 ‘동물의 왕국’이 눈에 들어왔다.

내 기준에서는 어르신들 프로그램이라 생각해 잘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긴 했는데, 멍~ 한 상태로 보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동물의 영역 표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인간이란 존재는 이런저런 배움이란 것을 통해 좀 세련된 방법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표시하지 않나? 생각되지만, 나의 경험 상 실제 삶에서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았던 것 같다.




15년 전.

회사에 상무 2명이 있었다.

지금에야 생각하면, 그 사람들 당시 나이보다 현재의 내 나이가 더 많기에 ‘어린놈의 자식들이 건방을 떨었었네!’라는 소리가 나올 것 같은데, 과거의 내 기준으로는 그 두 사람은 나이도 상당히 많고, 꽤나 높은 직급의 임원으로 생각이 되었었다.


한 명은 B2B 영업을 담당하던 A, 또 한 명은 B2C 영업을 맡고 있던 B였는데, 이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우두머리 수컷과 다름이 없었다.

둘 다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임원 A.

A의 ‘입’은, 정말이지  중고등학교 때 일진애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저질스러운 ’ 욕‘을 달고 살았는데,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인 척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만 수틀리면 “야이.. 개 xx야”, “이 병 x 같은 새 x들!” 등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스스럼없이 욕을 내뱉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회사 워크숍 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고 따귀와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윗서열의 수컷이 약한 수컷을 물어뜯는 장면이, 인간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곤 했다.

A의 더러운 욕과 폭행은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는데, 그럼에도 그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임원 B.

B 역시, ‘’하면 A와 쌍벽을 이루었는데, 이 사람은 A보다 더 동물의 왕국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입’으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문’으로 ‘욕(?)‘을 했기 때문이다.


4-5명이 들어가는 자신의 방에서 회의를 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뀌곤 했는데, 그게 좀 민망해하면서 소리 없이 뀌는 방귀가 아니라, 거리낌 없이 “!” “부르륵!” 하고 큰 소리로 방귀를 뀌는 것이다.

그 얼굴에는 일도 창피함이 없었고, 회의에 참석한 밑의 것들은 그 소리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자연스레 미팅을 이어갔다.

처음 회사를 이직하여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봤을 때, ‘이.. 이런 무례함이 말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뻔뻔한 B의 표정과 나와 B사이, 중간에 위치한 레벨 사람들의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오.‘라는 귀머거리가 된 듯한 표정과 반응을 보고는, 말하면 안 되는구나.. 를 깨닫기는 했다.


게다가 더 최악인 것은 회의 도중에, 가위로 코털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요새 나오는 코털 정리용 작은 가위가 아닌, 부엌에서나 봄 직한 커다란 가위를 코 안에 쑤셔 넣고, 코털을 정리를 하곤 했는데, 정말이지 ‘난 네 우두머리야. 그러니 어떤 것도 할 수 있어.’란 표현..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한 번은 새로운 비서가 출근한 적이 있었다.

우리 팀과 B의 방 사이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B의 방 안에서 “!” 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는 말도 안 되는 더러운 짓거리를 몇 개월이나 봐 왔던 터라, 나나 내 동료들은 그려려니 했지만, 그 비서는 갑자기 B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상무님! 부르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비서로 처음 출근해, 나름 긴장했었기에 방에서 들리는 방귀 소리를 자기를 부르는 소리로 착각을 했던 거였다. (이 이야기는 15년 내내, 술자리에서 옛날 사람들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또 하나, B가 화장실 대변기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는데, 자리에 앉아 용변을 보는 내내 “킁! 킁킁! 헉! 으헉! 훕! 아합!”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려대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칸에 있는 사람들은.. 말없이 용변을 끊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소리가 진짜… 안 들어 본 사람에게는 설명 못 할 만큼, 더러웠던 것 같다.

50년 살면서, 그렇게 요란하게 똥 누는 사람은 그 전이나,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정말 원초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던 존재였으나, 이건 뭐… ‘입’으로 욕을 하는 것도 아니니, 뭐라 신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비염이라서 응가할 때 킁킁댑니다. 하면 뭐라 할 건가?)


A, B 둘 다 어딘가로 회사를 옮겼다가 이제는 나이가 많아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만큼, 옛날에나 볼 법한 이런 사람들은..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방식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인간은 결과적으로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겨우 조금 자신의 위치가 올라갔다고,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경박해지며, 모션에 과장이 심해지거나, 앉아 있는 다리가 점점 더 벌어진다거나, 4명 앉는 식당 자리를 한 명은 코너에 가서 앉아야 할 만큼 넓게 쓴다거나.. 아직도, 그런 원초적인 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있다.



야!

그냥 다리 들고 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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